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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사회로 가는 길] 직장생활·양육 부담에… 둘째 아이 못 낳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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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6 19:51:45 수정 : 2018-06-26 17: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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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수 외동보단 둘 이상 원하지만 / 맞벌이 등 현실적인 문제로 꿈 접어 /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지적
#1. 전자업종에 근무하는 정모(30·여)씨는 낳은 지 4개월 된 딸에게 매달 200만원가량을 쓴다. 약 150만원의 ‘아이 돌보미’ 비용과 분유, 기저귀 값 등에 그 정도가 든다. 아파트 전세대출 이자로 60만원까지 내면 월급 통장 잔고가 순식간에 바닥나기 일쑤다. 정씨는 26일 “원래 아이를 둘은 낳으려 했으나 지금도 벅차서 둘째는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2. 평소 아들 하나, 딸 하나를 꿈꾼 손모(42)씨는 8살짜리 아들 하나로 만족하고 산다. 유통업계 종사자인 손씨 부부는 아이가 어릴 적 직장 내 경력관리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하는 중요한 출장이나 거래처 약속을 못 간 것이다. 그는 “둘째를 낳아 같은 상황을 되풀이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둘째’가 사라지고 있다. 아이를 낳기로 한 부부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외동으로 키우기보다 둘 이상은 낳으려고 한다. 현실은 둘째의 꿈을 접게 만든다. 맞벌이 부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직장생활을 위해, 양육 부담 탓에 둘째 갖기를 단념한다. 아이를 ‘안 낳는’ 사회에서 ‘못 낳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맞벌이 부부, 현실적 문제로 둘째 포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가족 변화에 따른 결혼·출산행태 변화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가 생각하는 이상적 자녀 수는 2.2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벌이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인지 외벌이 부부가 생각하는 이상적 자녀 수 2.19명보다 많다.

현실은 다르다. 맞벌이 부부의 실제 출생아 수는 1.75명에 그쳤다. ‘-0.46명’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정씨와 손씨 부부를 포함해 2명 이상 자녀를 계획했다가 결혼 후 1명으로 그친 맞벌이 부부 5쌍을 심층 인터뷰했더니 하나같이 경제적 어려움과 일·가정 양립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영상제작 분야에서 일하며 16개월짜리 딸을 둔 강모(33)씨는 “아이는 혼자 크지 않는다”며 “하나만 키워도 돌보미 비용을 포함해 200만원가량 드는데 둘 이상은 무리”라고 푸념했다. 의료업계 종사자 유모(34)씨는 “주택 구입을 위해 아내도 일해야 한다”며 “맞벌이를 포기하라고 하는데 그럼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사느냐”고 반문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박모(33)씨는 “아내도 나처럼 경력관리에 관심이 많은데 아이 때문에 아내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며 “일과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타협책으로 하나만 낳기로 했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들이 이렇게 생각하니 아이를 둘 이상 낳을 리가 없다. 아이를 안 낳는 것도 문제이지만 낳으려는 이들까지 포기하니 더 큰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둘째로 태어난 신생아 수는 15만2729명으로 2000년보다 75%(11만5585명)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신생아 수와 첫째로 태어난 신생아 수 감소율은 각각 56.19%, 40.13%였다. 15∼49세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올 1분기 1.07명에 그쳐 사상 처음으로 신생아 수 9만명 선이 무너졌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육아에 따른 기회비용이 갈수록 늘며 상당수 맞벌이 부부가 그냥 하나에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아이 ‘못 낳는’ 부부에 지원책 집중해야

전문가들은 맞벌이 부부가 왜 처음 세운 가족계획보다 아이를 적게 낳는지 정부는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아동수당 등 보조금 지원 위주의 저출산 정책에서 탈피해 젊은층의 주택구입비 지원과 일자리 창출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질 개선을 통해 결혼 전 가족계획대로 아이를 낳게끔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집행된 아동수당 등 영유아 양육지원 정책 예산은 9조5227억원으로 2010년 2조7200억원보다 4배가량 늘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수당을 도입하면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젊은층의 주거·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돌봄시설 확대와 경력단절 해소, 직장 내 여성차별 금지 등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맞벌이 부부가 믿고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써도 경력관리에 지장이 없는 기업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여성친화적 정책을 펴는 기업에 연간 약 10조원을 투자한다. GPIF는 2020년까지 펀드 규모를 30조원가량까지 늘릴 계획이다.

김영미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출산율을 올리려면 남녀가 같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공적 보육시설을 확대하고 일하는 여성에 대한 직장 내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자녀 위주로 지원 혜택이 맞춰진 저출산 정책도 개선이 요구된다. 첫째를 낳아 양육에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 둘째를 낳을 텐데, 지금은 둘째 이후부터 지원해 주는 식이다.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녀가 2명 이상인 부부에게 아파트 분양, 공공 어린이집 입소 등의 혜택을 준다.

윤 교수는 “양육은 첫째 아이 출산 후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첫째 아이 때부터 아이 돌봄에 어려움을 겪은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둘째 아이를 낳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첫째를 낳아야 둘째도 낳는 사다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며 “사다리 밑이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위로 올라갈 순 없다”고 꼬집었다.

2014∼2016년 지자체별 합계출산율이 1.69명으로 1위를 기록한 세종특별자치시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첫째 아이부터 출산지원금 1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에게도 정책 중점둬야

정부의 저출산 대책 일부를 맞벌이 부부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맞벌이 부부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들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날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맞벌이 가구 비율은 배우자가 있는 전체 가구의 44.9%에 달했다. 지난해 한 결혼정보업체가 전국 25세 이상 39세 이하 미혼남녀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7명(72.4%)이 결혼 후 맞벌이를 희망했다. 맞벌이 선호도는 △25~29세 80% △30~34세 72.8% △35~39세 67.5%로 젊을수록 높았다. 앞으로 맞벌이 부부 형태가 더욱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1970년대까지는 남성이 혼자 벌어도 생계가 유지됐지만 후기 산업사회로 넘어오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이 붕괴됐다”며 “남성이 혼자 벌어서는 가정 경제를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인구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여성 인력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 권장하면서 맞벌이 부부는 더 확산할 전망이다. 김 교수는 “남녀가 모두 경력을 관리하고 아이도 잘 키우려는 것을 생애계획으로 가져가는 맞벌이 부부 모델이 (대중적인 가구 모델로) 변하고 있다”며 “(저출산 정책도) 맞벌이 부부 모델에 맞도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돈 준다고 아이 낳진 않아 … 보조금에 쏠린 정책 바꿔야”

아시아인구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두섭(사진) 한양대 특임교수(사회학)는 26일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이 비지속적이고 획일적으로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순환근무 탓에 인구정책을 지속적으로 담당할 전문가가 없고, 저출산 지원 예산은 대부분 보조금 지원에만 쏠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전문성 있는 관료를 통해 지속적 인구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5년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 최초로 제4대 아시아인구학회장에 선출돼 활동 중이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자녀를 1명만 낳는 부부가 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았다. 이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재정적 문제로 (신분) 상승 이동의 장애가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아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런 부담을 가지지 않는 계층에서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하는데 현재는 교육비와 주거비 등에서 자유로운 계층이 굉장히 적어졌다.”

―정부도 각종 출산율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미 낳은 아이를 육아하는 것을 지원하는 데 정부 예산을 너무 집중했다. 보조금 지원을 지나치게 강조했고 이것이 수요를 창출할 정도로 시장도 이미 커졌다. 대만 등도 우리와 같은 여러 시도를 했지만 뾰쪽한 성과를 못 냈다. (출산 계획이 없었는데) 돈을 준다고 아이를 낳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 예산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합리적인 예산 분배는 무엇을 말하는가.

“정부가 정치적 구호에 이끌려 한쪽에만 집중 투자하지 말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집단을 지원하며 우선순위를 매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육아지원비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까지 다 나간다. 보육원이나 육아지원 수당이 과도하게 시행된 면이 있다.”

―인구정책을 담당하는 전문성 있는 관료도 부족하다고 들었다.

“(인구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계속 순환근무를 해 전문성 있는 관료가 부족하다. 평생 이 분야를 하는 게 아니라 기획재정부 등에서 잠깐 왔다 갔다 하는 식이다. 전문성 있는 관료가 부족해 사실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부부들이 이상적 숫자만큼 아이를 낳기 위해 정부 차원의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우리나라는 주거비 문제가 젊은 층에 가장 큰 부담이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도 출산율 정책으로 (출산 적령기) 부부들의 주거 문제를 도와주는 방향의 정책이 많이 나온다. 이제는 이미 낳은 아이를 돌봐주는 정책뿐 아니라 젊은 층이 아이를 낳게 하는 게 더 급해졌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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