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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리도 동의 못하는 역사교과서 시안이 강행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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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3 00:00:32 수정 : 2018-06-23 00: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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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중·고교생이 배울 새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진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도 ‘정부 수립’으로 바뀌게 된다. 교육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교육과정 개정안을 어제 행정예고했다. 현재 마련 중인 새 집필기준에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가 협소한 의미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민주주의를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가치를 고양하는 핵심 개념이다.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도 차별되는 용어이다. 우리 헌법의 전문과 제4조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하고 있다. 정부 수립 대목도 마찬가지다. 1945년 8월을 ‘정부 수립’으로 표기한 것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간주한 것에 따른 조치다. 건국절은 지난해 극심한 찬반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학계에서조차 정리가 안 된 사안이다.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은 내용을 교과서에 싣는 일은 적절치 않다.

유일한 합법정부 표현을 삭제키로 한 방침에도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현행 교과서 집필기준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돼 있으나 앞으로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 과정과 체제적 특징을 비교한다’식으로 바뀐다고 한다. 교육부는 “국가기록원 자료에 대한민국은 유엔 선거감시가 가능한 지역에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돼 있기 때문에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면서 북을 감싸려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교육부의 주장은 시곗바늘을 4개월 전으로 돌려보면 궤변에 가깝다. 교육부는 지난 2월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뀌는 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이 공개됐을 때 “연구진의 입장일 뿐, 우리 의견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국회 본회의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교과서는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일방 추진은 전임 박근혜정부의 국정교과서 도입 발상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폭넓게 수렴해 교육과정 개정안과 집필기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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