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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화재 현장서 부상자 구조에 힘 쓴 작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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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8 17:40:00 수정 : 2018-06-18 18: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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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치솟는 술집 안에는 아내도 있었는데, 당연히 빨리 구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지난 17일 밤 전북 군산시 장미동 유흥주점에서 발생한 방화 참사사건은 인근 주민들의 신속한 초기 구조활동 덕분에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화재를 목격한 임기영(69·트레일러 기사)씨는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유흥업소 현관 유리문이 깨지면서 불길이 밖으로 치솟는 것을 보고 곧바로 업소 측면에 달린 비상구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업소 비상구는 ‘ㄱ’자형 출입구에 2m가량의 간격을 두고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다. 문을 열면 곧바로 인접한 카센터와 맞닿은 구조로 화재 당시 비상구는 폐쇄돼 있지 않았으나, 출입문은 카센터와 곧바로 연결돼 자동차 수리용 리프트와 공구대 등 정비 장비로 인해 구조에 다소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전북 군산시 장미동 한 유흥주점에서 방화사건이 발생하자 비상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부상자들을 신속히 구조한 주민 임기영(69)씨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군산=김동욱 기자
임씨는 “두 번째 비상구를 열자마자 숨이 막힐 정도로 매케한 연기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며 “컴컴한 내부 바닥에는 연기에 질식해 의식을 잃은 손님들이 와글와글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매끝으로 코를 막고 들어가 쓰러져 있던 손님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뒤따라 달려온 주민들 10여명도 가세해 구조의 손길을 거들었다. 당시 업소 안에는 손님들 30여명과 사장 부부, 홀 서빙·주방 종업원 등 모두 33명이 있었다.

주민들은 구조 뒤 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이들을 신속히 병원으로 옮기려 했지만, 아직 119구조대가 도착하지 않았고 인근을 지나는 택시도 보이지 않자 도로변으로 뛰어나가 때마침 지나던 버스를 세웠다고 밝혔다. 버스 기사는 먼저 구조된 피해자 몇명을 태우고 행선지를 바꿔 군산의료원으로 곧장 향해 신속한 치료에 도움을 줬다. 현장에 신속히 출동한 일부 경찰 순찰차도 환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그 사이 유흥주점 앞 한 식당 주인은 비치해둔 소화기로 업소 주 출입문 쪽 화재를 진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덕분에 머리카락과 옷가지에 불이 붙은 한 손님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7일 방화사건이 발생해 손님 33명의 사상자를 낸 전북 군산시 장미동 유흥주점 일대에 대한 출입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군산=김동욱 기자
전북 경찰이 18일 군산시 장미동 유흥주점 방화사건 현장에서 감식을 벌이고 있다. 군산=김동욱 기자
주민들은 “방화사건이 발생하기 전날부터 이씨가 업소주인과 외상 술값 문제로 ‘술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목격했다”며 “이 같이 끔찍한 일이 실제 벌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개야도에 사는 이모(55)씨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방화 전날 낮에 업소주인에게 빚진 술값 20만원을 건네면서 자신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불만에 언쟁을 벌였다. 이씨의 불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날인 17일까지 이어져 이날 오후 2시쯤 다시 업소를 찾아가 술값을 따졌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이씨는 이날 오후 8시쯤 인근 선착장 어선에서 인화성 물질이 담긴 기름통을 들고 와 업소 앞 한 사무실에서 대기한 뒤 9시32분쯤 주점으로 들어가 비교적 출입문에 가까운 쪽에서 불을 질렀다.

불은 합성 소재로 된 테이블 소파 등으로 순식간에 옮겨붙었고 검은 연기와 함께 심한 유독가스가 실내에 가득 들어차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길에 휩싸인 손님들은 “불이야”라며 고함치며 희미한 비상구 유도등 불빛으로 향했으나, 늘어선 소파에 부딛히고 손님들끼리 걸려 넘어져 비명을 지르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비상구는 출입구 반대편 무대 측면에 쪽문으로 나 있었다. 주 출입구 쪽 주방 옆에도 하나 더 있지만 불길이 치솟는 바람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난 17일 전북 군산시 장미동 한 유흥주점에서 발생한 방화 당시 내부 손님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됐던 뒷측면 비상구를 119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군산=김동욱 기자
이날 불로 홀 테이블 등에 있던 손님 김모(57)씨 등 3명이 숨지고 이모(58·여)씨와 업소 주인 송모(55)씨 등 30명이 다쳤다. 이들은 인근 군산의료원과 전북대병원, 조선대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화상 정도가 심해 의식장애에 빠진 중상자들도 다수여서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주점 내부 280㎡와 집기류 등을 모두 태워 55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119에 의해 25분 만에 신속히 진화됐다. 불이 나자 군산소방서 등 7개 소방서 소방차 30여대와 소방관 110여명이 현장에 긴급 출동해 화재진압과 구조작업을 벌였다.

불이 난 주점은 소규모 1층 단층 건물로 소방법이 규정하는 스프링클러 등 의무설치 대상(5000㎡)에 해당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서 조사결과 주점 내부 소방설비는 소화기 3대와 비상 유도등이 전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대형 참사를 야기한 이씨는 범행 직후 배, 손 등에 화상을 입은 채 달아나 500m가량 떨어진 군산시 중동 선배 집에 숨어있다가 3시간30여분이 지난 다음날 오전 1시30분쯤 경찰에 검거됐다. 미혼인 이씨는 15년여 전 뇌수술을 받은 이후 술을 마시면 주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치료와 조사를 마치는 대로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군산=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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