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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고1 학부모들의 불안과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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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9 00:18:30 수정 : 2019-03-22 18: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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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고1부터 문·이과 통합교육 / 수능 시험은 기존 방식 그대로 / 천문학적 비용 투입 대입개편안 / 교육현실 직시·혼란 최소화해야

몇 해 전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고등교육 전문가의 특강에 참석한 적이 있다. 특강은 뼈 있는 농담과 함께 시작됐다. “제가 명색이 고등교육 전문가입니다. 덕분에 대학의 역사와 존재 이유, 현재의 위상과 대학의 미래 등을 주제로 특강을 의뢰받고 이렇게 강의를 하며 전국을 누빕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마누라가 ‘당신이 교육에 대해 뭘 알아?’라고 한마디 하면 그만 기를 펼 수가 없습니다”라는 고백이었다. 교육에 관한 한은 온 국민이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일화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교육이 곧 대학입시제도를 의미함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입시는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2년 예고제를 실시하고 있는 터. 현재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과 2학년 재학생이 치르게 될 대학입시의 구체적 방안은 이미 확정됐다. 문제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들이 참으로 딱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새로 도입된 문과·이과 통합교과서로 수업을 받지만, 시험은 기존의 수능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입시설명회를 할 때마다 식장을 가득 채우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조만간 닥칠 대학입시의 윤곽이 여전히 오리무중에 있으니, 불안감이 고조되고 불만족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1 학부모 사이에 돌고 있는 이런저런 루머를 들어보니, 대학의 수시모집 비율이 70%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이젠 ‘전 과목 과외’를 하지 않으면 내신성적 관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동네 보습학원 규모의 다양한 내신 학원이 문전성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규모가 작다 보니 ‘단가가 높아져’ 사교육비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내신성적이나 학생부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도 학부모 입장에선 불안과 불만의 원인이 된다. 이미 성적표 조작사건이 보도된 바 있어 마음이 산란하기만 한데, 성적 조작방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하니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내신 관리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 생각하니 불만도 커져만 간다.

 

수능 성적으로 선발하는 정시는 어차피 외고나 자사고 등의 특목고 학생이 아니면 재수생을 위한 전형이라고 한다. 현장 이야기로는 내신과 수능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내신도 관리하면서 수능도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일반고 재학생들은 내신에 목숨 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전 과목 내신성적 1, 2등급을 받아야 속칭 ‘서울대’(요즘은 서울 소재 대학을 모조리 서울대라 부른다고 한다)를 들어갈 수 있다 하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에 전 과목 과외라도 시키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면야 대학입시 전형이 이렇게 바뀌든 저렇게 바뀌든 초연할 수 있으련만, 그런 학부모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다. 대부분은 아이 성적에 맞춰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지망할지 고도의 눈치작전을 펴야만 하는 상황일 터. 수시 전형에서는 6개 대학에 원서를 낼 수 있고, 정시 전형에서는 3개 대학을 지망할 수 있는 현행 방식은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어 눈치작전을 더욱 부추기는 것만 같아 불만인데, ‘우리 아이 인생이 달린’ 이토록 중요한 결정에 정작 학부모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조차 없으니 불만이 고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이번에도 국가가 입시정책을 발표하면 국민은 입시대책을 마련할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치르는 비용이 천문학적 규모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임이 분명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명분하에 끊임없이 입시정책이 바뀔 때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음직한 생각이다.

 

정작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주제가 수능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수준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중·고·대학교육은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의 흐름을 타야 할지 머리 싸매고 연구하고 모든 교실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지.

 

이 상황 앞에서 아직도 수수께끼인 것이 있다. 온 국민이 대학입시에 올인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은 고등학교 때까지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아왔는지를 거의 무지하고,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은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회변화 속도는 멀미가 날 만큼 눈부신데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대학입시에 발목 잡혀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충분한 투자를 하고픈 마음 간절하나, 대신 천문학적 비용이 허무하게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교육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한 상태에서 고1 학생들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학부모의 불안과 불만을 다스려줄 수 있는 입시의 묘안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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