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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금기錦綺

이화영

가죽이 터진 라일락 나무가 허물을 벗고 있다.
흔들림을 피하는 일은 뿌리와 이파리에 대한 불명예다
어린 색시를 잃어버린 늙은 지아비 몸짓으로
물길을 트는 마른 줄기 숨이 차다
만질 수 없는 뿌리를 향한 간절함이
동편으로 사시랑이 같은 꽃잎 내밀었다
나 저 꽃 보는데 저 꽃 나 볼까
금기의 다른 뜻이 곱고 화려한 꽃이라면 저 꽃은 금기다
허용되지 않는 질문이 어둑발 내린다
금기여, 신발 아래 온 데로 가거라
원은희

어린 색시를 잃어버린 늙은 지아비 몸짓으로 라일락 나무가 허물을 벗고 서 있습니다.
가죽이 터진 라일락 마른 줄기는 물길을 트는 데도 숨이 찹니다.
힘들게 물길을 튼 늙은 라일락 나뭇가지에 사시랑이 같은 꽃이 피었습니다. 만질 수 없는 뿌리를 향한 간절함이 꽃을 피운 겁니다.
사시랑이 같은 라일락은 가늘고 힘이 없는 꽃인데도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나는 저 꽃을 보는데 저 꽃은 나를 보고 있을까요?
허용되지 않는 질문이 어둑발처럼 내립니다.
사방에 어둠이 퍼져 가면서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사시랑이 같은 나는 라일락의 꽃말처럼 젊은 날의 추억을, 첫사랑을 생각합니다.
곱고 화려한 꽃인 금기(錦綺)가 흔들립니다.
흔들림을 피하는 일은 뿌리와 이파리에 대한 불명예입니다.
나도 저 꽃을 바라보고 저 꽃도 나를 보고 있습니다.
금기(禁忌)는 깨라고 있는 겁니다.
금기(禁忌)여, 난 당신을 깨고 금기(錦綺)를 맞이하렵니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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