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폐쇄가 결정된 월성 1호기는 종전 2012년에서 2022년까지 10년 연장하기 위해 5600억원이 들어갔다. 천지1호기 등 원전 4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 6기에는 설계 용역과 부지 매입 과정에서 3400억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한수원의 이번 결정으로 1조원 가까운 혈세가 공중으로 날아간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에도 공정률 28%의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했다가 3개월 만에 재개하는 바람에 1000억원의 예산 낭비를 초래한 적이 있다.
긴급 이사회 의결도 정해진 수순에 의한 요식행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사회에는 이사 13명 가운데 12명이 참석했다. 12명 중 11명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12명 전원이 신규 원전 4기 백지화에 찬성했다. 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을 한 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숙의(熟議)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이사회의 결정에는 이런 숙의 과정조차 없었다. ‘소통 정부’에서 중시되는 절차적 정당성마저 잃었다. 한수원 노조가 “도둑 이사회의 결정은 원천 무효”라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전력은 원전 대신 발전단가가 비싼 천연가스,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을 늘리다 이미 두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탈원전 정책은 원전 수출에도 찬물을 끼얹게 된다. 탈원전이 가속화할수록 국가와 국민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폐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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