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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장밋빛 평화’ 냉정하게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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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7 23:15:26 수정 : 2018-06-17 23: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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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경협·군사적 긴장 완화/모호한 비핵화에도 급속 진행/종전선언에 취해 北 도발 망각/낭만 거두고 평정심 되찾아야 4·27 판문점선언에 이어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두 달도 채 안 된 이 기간만큼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충만한 때를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남북 실무자들은 철도, 도로 등 교통인프라 구축을 위해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산업계 곳곳에서도 남북경제협력에 관한 세미나를 하루가 멀다 하고 개최하고 있다. 나아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모양새다. ‘평화’라는 재료는 부동산도 춤추게 하고 있다. 서울로 진입하는 관문인 경기도 파주에서는 남북경협 기대감에 토지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땅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한다. 격동의 시기인 이때에 6·13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여당과 청와대는 남·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미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며 대국민 홍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못한 일을 해냈다며 북·미 정상회담 ‘세일즈’에 올인하고 있다.

온통 장밋빛이다. 지난해 9월 6차 북핵실험으로 한반도와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던 사실은 이제 아득한 옛일로만 느껴질 정도다.

신동주 국제부 차장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북한 경비병의 조준 사격을 받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북한군 병사를 담은 TV 영상이 눈앞에 또렷한데도 말이다.

전쟁 위기로 치달을 것처럼 보이던 한반도, 그중에서도 남쪽은 6·25전쟁 종전선언으로 항구적인 평화가 올 것이라는 마약에 취해 있다. 그러나 역사는 상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종전선언, 평화협정이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는 사실을 이미 증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 후 평화란 샘물에 목말라하던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와 뮌헨협정(1938년)을 체결한 후 자국민에게 평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협정 서명 1년도 안 돼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대전의 불을 댕겼다. 분단 상태로 내전을 치르던 베트남은 어떤가. 1973년 베트남전 교전 당사국인 미국과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남 임시혁명정부가 함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호찌민)이 함락됐다. 협정 체결 2년 만이었다. 베트남 공산화는 미군을 등에 업은 남베트남의 힘의 우위도 무용지물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다.

현재 남북 화해 무드에 북한 비핵화 기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남·북·미 종전선언이 실제 이뤄질 경우 그 상징성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종전선언에 다급한 나머지 북한 비핵화를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냉정함을 잃은 채 평화만 갈망하다 전쟁을 불러온 역설적인 현실은 칼을 숨긴 채 세 치 혀만 내두르는 책사의 사탕발림으로 국가의 존망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금의 문제는 판문점선언이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모두 한반도 비핵화가 등장하지만 그 말 뜻이 북한 비핵화인지 불분명하고, 대한민국이 이런 모호한 수사를 반복한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갖추지 못한 데 있다. 청와대가 나서서 민족을 내세운 낭만적인 평화론을 홍보하는 모습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타자의 행동을 이끌 수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상황을 장악할 수도 있다.

지금 청와대와 정부가 독일 통일 당시 서독 정부와 같은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서독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독일 통일을 반대하는 프랑스, 영국, 소련을 모두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우리는 거창한 정치쇼보다는 자유롭게 왕래하는 채널을 만들자고 북한에 요구해야 한다. 6·25전쟁 이후 남북민이 서로를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남북 경협도, 남북 교류도 현재로선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가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실천하는 데 있다. 일주일 후면 6·25전쟁 발발 68년을 맞이한다. 정전협정에 서명한 지도 65년이 지났다. 평화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감에 모두가 들뜬 때일수록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평정심을 되찾아야 한다.

신동주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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