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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美 해상초계기 묻지마 도입?”…경쟁입찰 외면하는 文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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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6 10:00:00 수정 : 2018-06-16 0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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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브 소드피시 해상초계기가 항만 인근 해안을 비행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사브 제공
문재인정부의 첫 대규모 무기도입사업인 신형 해상초계기 사업이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2조원 규모의 혈세를 투입해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침투하는 주변국 잠수함을 탐지하고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처할 신형 해상초계기를 도입하는 사업인만큼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투명하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오는 25일쯤 열릴 예정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공개경쟁과 수의계약 방식을 모두 상정해 심의하거나 수의계약 방식만을 상정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이 문제로 사업 주관 부처인 방위사업청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다”고 전했다. 단일 사업방식을 선정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하는 관례를 깬 것은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무기 도입 사업에 대한 책임 회피와 직무 유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보잉 P-8A 해상초계기가 미국 해군 줌월트급 구축함과 함께 해상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의혹 부채질하는 방사청의 무리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주재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무기도입 사업과 관련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방위사업청 핵심 간부와 국방부 및 군 관계자, 민간 위원 등이 참여한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지만 대부분 하나의 안을 올린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이를 심의해 가부를 정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일반적으로 무기도입 사업을 진행할 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이 주로 상정된다. 참여업체들을 경쟁시켜 국익을 극대화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조원 규모의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도 경쟁입찰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의계약 방식만 상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올리는 것은 더더욱 드물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는 “오랫동안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업무에 관여했지만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이 이같은 무리수를 두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 안팎에선 25일쯤 열릴 예정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앞두고 진행될 사업관리분과위원회를 주목하고 있다.

신형 해상초계기 사업처럼 거액을 들여 무기를 사는 경우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장이 주도하는 사업관리분과위원회에서 논의해 합의를 거쳐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한다. 사업관리분과위원회는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유관 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스웨덴 사브 소드피시 해상초계기가 바다 위를 날며 정찰을 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사브 제공

ADD는 스웨덴 사브가 제안한 1조원 규모의 기술이전과 조기경보통제기 공동생산 등 협력방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형 해상초계기 도입 반대급부로 첨단 기술을 이전받아 한국형전투기(KF-X), 3000t급 잠수함 등 국산 무기개발에 활용하려는 ADD와 수의계약에 미련을 못버린 방위사업청의 입장이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군 소식통은 “방위사업청이 수의계약과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함께 상정하는 방안, 수의계약 추진여부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묻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며 “수의계약에 부정적인 ADD를 무력화해 어떻게든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수의계약 방식을 상정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수의계약 진행 여부를 묻는 안이나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방식을 함께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이 현실화되면, 방위사업청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여론전을 펴 수의계약 방식을 관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보잉 P-8A 해상초계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무엇을 위한 수의계약인가

수의계약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P-8A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신형 해상초계기 도입 사업이 공론화된 2016년부터 방위사업청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에 의한 P-8A 수의계약을 검토해왔다. 이같은 기조는 정권 교체와 스웨덴 사브(소드피시)가 1조원 규모의 파격적인 절충교역과 잠수함 등 기술이전을 내걸며 참여의사를 밝혀 공개경쟁입찰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방위사업청이 수의계약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차기전투기(F-X)사업이다. 

2013년 9월 2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방위사업청이 상정한 미국 보잉 F-15SE 선정 안건을 부결시켰다. 방위사업청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정한 기종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정무적 판단으로 부결 처리한 것이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2014년 3월 24일 미국 록히드마틴 F-35A를 FMS 방식에 의한 수의계약으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F-35A가 도입됐지만 당초 60대였던 도입 규모는 40대로 줄었다. 8조3000억원이었던 사업비가 7조4000억원으로 9000억원 줄어들었지만 도입 숫자는 20대나 감소하면서 대당 단가는 상승했다. KF-X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기술 이전이 거부됐고, 절충교역의 핵심인 군사통신위성 발사도 록히드마틴의 비용분담 요구로 1년 이상 표류하다 간신히 재개됐지만 록히드마틴은 사업을 지연시키고도 면책을 받았다.

수의계약이라도 가격과 성능, 기술이전 등의 분야에서 여론의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신형 해상초계기 사업을 대하는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의 편향적 태도는 F-X 사업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도입기종이 변경되면서 공군 요구보다 20대나 적게 구매하면서 대당 단가를 상승시켰으면서도 핵심 기술을 이전받지 못했고, 통신위성도 발사가 늦어져 막대한 손실을 국가와 군에 끼쳤지만 방위사업청 관계자들 중 제대로 책임을 졌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F-X 사업 수의계약의 전례를 보면, 신형 해상초계기 사업 역시 수의계약이 이뤄지면 F-X 사업처럼 미국 방산업계의 호구 노릇을 자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적폐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이 2조원이라는 혈세를 쓰는 신형 해상초계기 사업을 대하는 태도는 이 사업을 공개경쟁입찰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방위사업청 스스로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F-35A 수의계약은 남북 대치 국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스텔스 전투기 도입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남북,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반도 전쟁 위험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비싼 돈 들이고도 첨단 기술 및 국내 방산업체 일감 확보라는 실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수의계약으로 급하게 도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브 소드피시 해상초계기가 “실체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은 공중급유기 사업 당시 개발이 끝나지 않은 미국 보잉 KC-46A를 공개경쟁입찰에 참여시킨 전례를 망각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P-8A 생산이 곧 종료되므로 수의계약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나 F-15 전투기도 생산라인이 멈춘다는 말이 나온 지 수년이 됐지만 여전히 가동중이다. 보잉이 우리나라에 P-8A를 꼭 판매하려 한다면 사업 방식에 관계없이 제3국 추가 수출 등을 염두에 두고 생산라인을 계속 유지하며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수주를 시도할 것이다. 보잉은 우리나라의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할 능력을 갖춘, 사브보다 더 크고 자본력과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글로벌 방산업체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무기를 구입하려는 우리나라가 갑이고, 무기를 팔려는 해외 업체는 을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방위사업청이 제대로 갑질을 해서 국익을 극대화하기를 바란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모를 정도로 해외 업체에 끌려 다닌 사례는 F-X 사업 한 번으로 족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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