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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세기의 회담, 판도라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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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1 22:30:25 수정 : 2018-06-11 22: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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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CVID·CVIG 접점 찾기 / 불가능과 모순의 게임에 도전 / 회담 성공해도 근본 해법 안돼 / 심오한 평화의 철학 수립 필요 오늘(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기의 회담을 앞두고 북·미, 미·북 양국이 그동안 상대방에게 요구해온 완전한 비핵화(CVID)나 완전한 체제보장(CVIG)이 어느 수준에서 접점(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단계적·동시적이라는 말도 나오고, 종전선언, 평화협정 등 말이 무성한 가운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전망이다. 핵전쟁을 막기 위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전략적 속임수나 평화코스프레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한의학의 기사회생 극약처방을 보는 것 같다.

세계는 참으로 위기일발 패권경쟁의 아수라장에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핵을 실험하는 단계가 아니라 핵보유국이 되었고, 그것도 수십 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가진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것이 현실적·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지구상의 어떤 나라가 완전한 체제보장을 다른 나라로부터 받는 일이 역사에 있었던가. 특히 내부혁명은 막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양국은 불가능과 모순의 게임에 도전하고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권투나 스포츠에서 흔히 승리하기 위해서 벌이는 상대방에 대한 눈속임은 정당한 기술이다. 정치군사외교력과 경제문화능력 등 국가의 몸집으로 보면 북한과 미국의 권투시합은 플라이급과 헤비급의 대결 같지만, 핵과 미사일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장전한 양국의 대결은 마냥 그렇게 볼 수만도 없다. 그야말로 핵은 핵 펀치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에서 일말의 위기를 느끼니 북한과 미국의 양국 회담이 성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인간이라는 종은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인가. 호모사피엔스는 더 이상 종래의 평화를 이루는 방식, 즉 전쟁과 전쟁 사이에 잠시 성립되는 평화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싸움(경쟁, 전쟁)을 즐기는 인간을 개조하지 않으면 평화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삶에서 죽음은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다. 개인이 아닌 인류 종말의 불안과 공포에서 이에 상응하는 철학, 심오한 평화철학의 수립이 보다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핵무기 앞에서 위태로운 평화를 바라보는 인류의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에서 인류는 핵을 가져도 되는 나라(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와 핵을 가져서는 안 되는 나라로 분류되었다. 공식적으로 핵보유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이다. 세계가 유엔 중심의 패권경쟁의 시대라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핵보유국이 아닌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볼 때 호전성과 더불어 핵기술 이전에 대한 불신으로 묵과할 수 없다고 본다. 북한의 핵보유를 비공식적으로라도 인정하면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일본, 한국은 물론 세계가 걷잡을 수 없는 핵 도미노로 들어갈 위험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핵을 만들어본 경험과 핵 설계를 가진 나라를 원천적으로 비핵화할 방안이 있을 것인가. 핵 기술자의 머리를 바꾸어버릴 수도 없고, 이들을 집단으로 제3국으로 보낼 수도 없다. 이것은 또 다른 인권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 국가에 특정의 기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기술평등의 위반이다. 그러나 권력경쟁의 인간세계에는 그러한 불평등이 존재해온 것도 현실이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머지않아 핵도 총과 같은 평범한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류로 하여금 보다 근본적인 평화에 대한 염원과 국제적인 규칙이 필요함을 뜻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계평화를 위한 싱가포르 북·미 회담의 성공적인 결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근본적으로 불안하고 공포에서 헤어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공격 본능이고,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이다. 핵은 이미 어떤 불가침협정이나 평화협정도 무색하게 할 수 있는 공포의 무기로서 ‘인류의 가장 큰 거짓말’이 되었다. 사용할 수 없는 핵은 가장 큰 폭력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허무이다.

대한민국은 6·25 정전협정 이후 북한을 공격한 적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까지도 천안함 폭침 등 무력도발을 감행해왔다. 아무쪼록 남북한이 평화적 경쟁을 통해 더욱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염원해본다. 가장 심각한 적대국 사이에서 설사 거짓말일지라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속아주는 것도 속는 것도 일종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최면의 존재이다. 행복전도사에 따르면 억지웃음도 웃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에게 속아서 행복해진다고 한다. 인간은 자기기만을 통해 번영을 이룩한 유일한 영장류이다.

속고 속이는, 속아주는 체하는 트럼프·김정은의 거래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세계무대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는 점이다. 어떤 독재자를 세계무대에, 열린 무대에 나오게 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식 개혁개방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저의 속에 남조선 적화통일의 야욕이 숨어있다고 의심된다면 우리 국민은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배전의 신념과 한·미동맹의 유지, 그리고 주체사상보다 우월한 국가철학의 확립이 절실할 뿐이다.

미국에 전적으로 한국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사대주의 근성이다. 미국도 국가이익과 합치하는 한에서 한국을 도울 뿐이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방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한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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