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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인간을 알기 위해 쓰고 그렸지만 … 늘 잡힐듯 하다가 날아가”

입력 : 2018-06-11 20:49:18 수정 : 2018-06-11 20: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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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있는 풍경’ 펴낸 고려인 소설가 박미하일
소설가 윤후명이 199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은 ‘하얀 배’라는 중편이었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카자흐스탄에 가서 한국에서부터 만나고 싶었던 고려인 소녀 ‘류다’를 찾아가는 여정에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고려인 청년 미하일이 등장한다. 1990년 옛 소련이 붕괴하자마자 카자흐스탄 알마타에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교육원이 들어섰는데, 이곳에서 한글 교육을 받은 1세대가 바로 미하일이었다. 그는 19세기 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해 씨를 뿌린 고려인 5세다. 연해주에서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으로 추방당해 간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부모가 미하일을 낳았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두샨베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우크라이나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카자흐스탄에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다가 모스크바에 정착했다. 윤후명은 미하일의 소설 발문에 “일견 낭만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그의 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기만 하다”면서 “나로서는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유랑’이 아득하기만 하다”고 기록했다.

“목수이자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직장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식사를 하고 수채화를 그렸어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렸을 때 저도 아버지를 보면서 따라 그렸어요. 아버지가 처음에는 꽃을 그려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소질이 있었는지 그때부터 아버지가 그림을 가르쳐 줬습니다. 글을 쓸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그림을 그릴 때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소설집 ‘사과가 있는 풍경’(전성희 옮김·상상·사진)을 펴낸 박미하일(69)을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만났다. 그림과 소설을 병행해온 그는 한국에서만 열네 번째 전시를 하는 중이었다. 러시아 여인이 자작나무 숲에서 금발을 올리는 ‘여름 아침’에서부터 한국 파주의 붉은 봄꽃, 명멸하는 빛의 날갯짓을 반추상으로 표현한 ‘새’ 등 20여점이 걸려 있었다. 이 중 절반은 이미 팔렸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소설 9권을 펴내면서 유명 문예지 주관 카타예프문학상을 두 번에 걸쳐 수상하고, 러시아작가협회에서 주는 쿠프린문학상까지 받은 유명 소설가인 그는 한국에서도 6권이 번역됐고 재외동포재단과 펜클럽에서 주는 문학상과 KBS예술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처음으로 한국 제주를 배경으로 한국인 ‘강소월’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 ‘헬렌의 시간’(상상)에는 화가의 필치로 묘사한 아름다운 풍광과 선한 글로벌 이웃들의 사랑이야기가 따스하게 흘러간다. ‘사과가 있는 풍경’이나 ‘해바라기’에도 아름다움을 채집하는 사진작가나 테러에 부상당한 소년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격렬하진 않지만 잔잔한 사랑과 함께 스며든다. 반 고흐가 사랑한 따스한 노란색을 좋아하는 그의 글에도 그 색깔의 질감이 읽힌다.

“미대를 졸업할 무렵 처음 쓴 단편이 카자흐스탄 신문에 실렸어요. 눈 덮인 산을 그리는 화가 곁에 놀러오는 소녀 ‘사울레느’ 이야기였지요. 그 소녀는 도시로 가야 하는데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아 잊지 않기 위해 날마다 화가 곁에 오고, 화가는 소녀를 위해 그림을 남겨두고 떠납니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면서부터 ‘대나무 음악’이라는 중편을 필두로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왔지만 아직 안 잡혀요. 잡힐 듯하다 날아가 버리곤 합니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몽상과 동화적인 분위기가 읽힌다. 관능적인 사랑도 은은하게 깔린다. 마냥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소련이 해체되던 혼돈기를 다룬 장편 ‘밤, 그리고 또 다른 태양’에는 낡은 열차를 타고 이주하는 시인 지망생 청년의 혼돈이 자욱하게 깔렸다. 미하일은 이 소설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꿈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얼굴은 한국 사람이지만 본인은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을 쓰면 러시아 사람이 쓴 게 아닌 것 같다고 평론가들이 말한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한국의 혼이 드러난다는 평가인데, 그는 이 말이 듣기 좋았고 뿌리에 대한 자부심도 느낀다고 했다.
모스크바와 한국을 오가며 소설가와 화가로 살아온 고려인 5세 박미하일. 한국문학을 러시아에 소개하는 일도 맡아온 그는 “러시아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더 흥미로워한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깜짝 놀랐죠. 자유가 있지만 다 법을 지키고, 조용하고, 강도들 그런 거 하나도 없고 밤에 혼자 다녀도 누가 해치지 않아서 다 좋았어요. 당시 러시아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모든 것이 혼돈이었습니다. 알마타 조선예술극장에서 일할 때 북한에도 한 번 가봤는데 그곳 역시 이데올로기 때문에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독립된 카자흐스탄은 자기네 말만 쓰기를 강요해 러시아어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모스크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92년 알마타 한국교육원에서 연수차 보내준 것이 계기였다. 이 해에 알마타에서 윤후명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이듬해 인사동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친구처럼 지낸 윤후명을 통해 한국의 역사 문화와 일상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그이 또한 한국의 문학이 궁금해 찾아 읽다가 러시아에 한국문학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문열 ‘사람의 아들’(2004)과 윤후명의 ‘둔황의 사랑’(2011)을 번역했고, 박경리의 ‘토지’ 1권(2006)에 이어 2권 번역을 마쳐 올여름 모스크바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토지’에는 그가 그린 삽화 40여장도 수록됐다.

“한국 작품들을 번역하면서 이곳 도시 생활과 젊은 사람들 생각도 여러 가지 알게 됐습니다. 박경리 선생 ‘토지’에서는 조상이 같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됐죠. 평사리라는 조그만 마을 역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학습하게 됐습니다. 언어도 생활도 슬픈 사랑도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러시아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특히 문학 하는 사람들은 ‘토지’를 더 재미있게 보는 것 같습니다.”

미하일은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래 매년 한국을 다녀갔다. 대전 인근 계룡시 엄사리에서 오래 거주하기도 했고, 근년에는 그의 딸이 정착한 파주에서 4년째 머무르는 중이다. 모스크바와 한국을 오가며 살아온 세월 속에 한국말이 늘었지만 깊은 인터뷰를 하기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한국어는 달변이 아니어도 한글로 번역된 소설들을 보면 깊은 사유와 따스한 서정을 충분히 접할 수 있다. 그에게는 소설과 그림이 서로 다른 장르가 아니라 그의 생각을 펼치는 같은 도구이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림보다는 글이라고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글이 더 적합한 수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랑의 DNA를 숙명으로 타고난, 칠순에 이른 한민족 디아스포라 예술가 박미하일은 소설 후기에 이렇게 썼다.

“지난 몇십년 동안 나는 늘 ‘나는 다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항상 나 자신에게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 우리는 커다란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를 깨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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