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일상톡톡 플러스] 낙태죄 폐지된다고 아이 함부로 만들고 지울까?

입력 : 2018-06-10 17:00:00 수정 : 2018-06-09 11:20:3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A씨는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뱃속에서 지우는 게 낫다"며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성관계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B씨는 "성관계는 남녀 같이 했는데, 왜 그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원치않은 임신도 다 여성이 조심하지 않아서, 여성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냐"고 반문했다.

C씨는 "낙태죄를 여성에게만 물으면 위헌 의견이 다수겠지만, 남녀 모두에게 물으면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것"이라며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면서 간통죄를 폐지해놓고 낙태죄를 여성에게만 묻는 현행법이 위헌이 아니면 뭐겠냐"고 지적했다.

D씨는 "남성들도 낙태죄 폐지하는데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남녀 모두 경제적, 사회적 이유 등으로 아이를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이번 차에 폐지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E씨는 "임산부를 폭행해 아기가 유산되면 가해자에게 태아에 대한 살인죄를 묻지 않는다"며 "산모가 임신중절수술을 하면 죄가 된다. 심지어 남성은 처벌 안 받고 여성만 받는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F씨는 "낙태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지금 이 나라 낙태죄는 철저하게 미혼모인 여성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우니 이런 법을 뜯어고치자는 것"이라며 "낙태죄로 고발하는 대다수가 여성과 같이 하룻밤을 보낸 남성"이라고 하소연했다.

G씨는 "낙태죄가 없어도 너도나도 낙태하지 않는다. 임신만큼이나 낙태도 여성의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그간 원치 않던 임신에 힘들어하던 이들을 생각해달라"고 촉구했다.

H씨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의 아이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는 모성본능이 있는 어머니 본인"이라며 "그럼에도 그 아이를 지운다는 것은 여성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 낙태가 합법이 된다고 해서 아이를 함부로 만들고 지울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사가 불법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을 하면 최장 한 달까지 자격이 정지될 수 있지만, 실제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는 최근 5년간 27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임기 여성 5명 중 1명이 낙태를 경험했다는 조사까지 나왔지만, 형법이 수술 당사자인 여성과 의료진 양쪽에게 죄를 묻고 있어 적발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 6년만에 공개변론을 재개한 가운데 사문화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10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임신중단 수술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라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약 5년간 27명이었다. △2013년 1건 △2014년 3건 △2015년 8건 △2016년 13건 △지난해 2건 등 27건에 대해 처분이 이뤄졌지만, 올해는 현재까지 단 1건도 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형법 207조1항에 따라 의료진의 낙태 시술은 불법이다. 모자보건법상 '강간에 의한 임신'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일부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규칙에서 보건복지부는 불법 낙태 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검찰이나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이 행정처분을 의뢰하면 이를 '비도적적 진료행위'로 보고 1개월 이내 자격정지 처분을 하고 있다.

복지부는 2005년과 2010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연간 임신중단 수술 건수를 35만590건과 16만8738건으로 추정했다. 지난 4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서는 16~44세 가임기 여성 2006명 가운데 5명 중 1명꼴(21.0%)인 422명이 임신중단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 행위가 보건당국에 확인된 건 1년에 5건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복지부는 "형법에서 낙태죄는 당사자인 여성 본인과 담당의사가 처벌받게 되어 있다"며 "서로 신고하지 않는 이상 임신 중단이라는 상황 자체가 노출되지 않아 신고 건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3자 고발 안 하면 낙태죄 적발 어려워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1항은 임부가 낙태한 때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270조1항은 임부의 동의를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 등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3자가 고발하지 않는다면 낙태죄는 적발하기 쉽지 않다.

이에 낙태죄를 둘러싼 사문화(死文化)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도 최근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앞두고 위헌 취지로 헌재에 의견서를 내면서 사문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여가부는 의견서를 통해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낙태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낙태죄 처벌 대상이 '임부'와 '낙태하게 한' 사람에게 한정되고, 임신중절 과정에서 배우자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남성에 의한 협박 또는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헌재가 올해 1월 의견을 묻자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논의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대신 실태조사 등을 통해 현황을 보여주는 임무를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가 2010년 이후 8년 만에 진행되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1월 낙태죄 폐지 국민 청원에 답변하면서 실태조사를 약속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7~8월 이전 조사(4000명) 때보다 많은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태조사에 착수, 분석 결과를 오는 10월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피임실패율 30%나 된다고?" 낙태하지 않은 여성 비율도 포함한 수치

앞서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사건 공개변론에서는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법률을 놓고 찬반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핵심 쟁점은 '태아 생명권 인정' 여부였다.

헌법 소원을 청구한 의사의 대리인들은 태아 생명권은 이미 태어난 사람과 똑같이 인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태아 생명권은 사람의 생명권과 달리 제한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더 존중돼야 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리인으로 나선 김수정 변호사는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한다"며 "태아가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서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낙태죄 합헌 입장인 법무부 측은 태아도 독립된 생명권의 주체로서 낙태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법무공단 소속 김영두 변호사는 "태아는 8주만 돼도 중요 장기가 형성되고, 16주가 되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태아는 와 별개의 생명체라 생명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헌법재판관들도 질의했다. 태아 생명권, 임산부 자기결정권 중 어떤 권리를 우선시해야 하는지를 살피기 위한 질의였다.

주심 재판관인 조용호 헌법재판관은 "낙태는 태아가 생명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되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인데도 입법자가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게 부당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질문했다.

이에 청구인 측 박수진 변호사는 "임신을 지속한 여성이 일과 학업을 포기하는 것도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한다"며 "우리 법은 태아와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 태아는 법적으로도 생명의 주체라고 보기 힘들다"고 답변했다.

현행 민법은 태아가 출생한 후부터 각종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청구인 측의 또 다른 대리인인 강남석 변호사는 "태아 생명권과 임산부 자기결정권을 조화롭게 해석해야 하는데, 낙태죄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만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 줄어들고 있는지를 놓고도 격론이 벌어졌다.

조 재판관은 "임신은 자유로운 성관계의 결과로 볼 수 있고, 피임 도구를 사용하거나 사후 피임약을 통해 원하지 않은 임신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데도 낙태를 금지하는 건 임산부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이에 강남석 변호사는 "자유로운 의사로 임신이 됐어도 의학적으로 태아가 정상적으로 태어날 수 있는지, 사회적·정신적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며 "이미 많은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또 다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도 "100% 안전한 피임은 실질적으로 어렵다"며 "피임 실패율이 30% 정도로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법무공단 서영규 변호사는 "피임 실패율은 낙태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까지 포함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