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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사람] “우주는 내 운명”… 캔버스 안에 고스란히 담은 ‘근원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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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4 21:02:52 수정 : 2018-06-05 1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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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계곡’ 일구는 천영덕 화가 / 어려서부터 우주·하늘과 깊은 인연 / 해외 전시 다니며 운석에 빠지기도 / 우주지구박물관 등 외도 경험 통해 / 그림이 천직임을 비로소 깨달아 / 모든 물체·생명체는 빛에서 시작 / 산골 적막 속에서 ‘빛의 울림’ 담는 중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자 어둠이 계곡을 메워가고 있다. 하늘엔 별빛이 얼굴을 내민다. 우주 공간이 열리는 풍경이다. 8년 전 작가는 이곳으로 찾아들었다. 근원의 우주 빛을 그리기 위해서다. 1㎞에 이르는 공간에 ‘별이 빛나는 계곡’을 일궈 갔다. 온전히 우주의 빛을 담아내기 위한 ‘스케일’을 위해서다. 모네가 빛을 그리기 위해 지베르니 정원을 가꾼 것처럼. 작가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캔버스 위로 무대를 옮겼다. 천영덕(67) 화가의 이야기다.

 “아주 어릴 때부터 등에 북두칠성 점이 아주 크게 있어 많은 사람이 ‘칠성님’이라고 했다.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러나 눈은 늘 하늘에 가 있었다. 하늘을, 우주를 동경하게 됐다. 20대 때부터 우주를 그리고 운석을 채집하게 된 것도 우연치고는 묘하게 연결이 된다. 기독교식으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예비하고 인도한다는 말이 절로 절감이 된다. 속되게 말하면 사주팔자라고나 할까. 25년 전엔 우연히 중국에 알려져 ‘북두칠성 귀인’ 증서를 받기도 했다. 중국별연구자의 초청을 받아 간 자리에서다. 달라이 라마도 북두칠성 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늘 우주가 자신을 인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천영덕 화백. 그는 산골 계곡에 ‘별이 빛나는 작업실’을 마련하고 근원의 빛을 그려가고 있다.
그의 인생은 모두가 우주와 연결돼 있다. 꿈에선 용을 딛고 계곡을 건너기도 했다. 충남 공주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작업실은 외부에선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안골이다. 6·25 땐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을 정도다. 온전히 하늘과 마주하기 좋은 장소다.

“모네가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했다’는 말이 가슴에 날아들었다. 근원의 빛을 잡아내려 했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부여 태생인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술 공부를 한다고 프랑스로 건너가 10년쯤 살았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로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밤엔 그림 그리고 낮엔 그림을 파는 철저한 프로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다국적 작가 30여명에게 몽마르트르 그림을 그리게 해 파는 비즈니스 실력도 발휘했다. 남들은 상술이라고 했지만 스스로에게는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현실적응 훈련이었다.

이런 노력은 귀국 후 그가 강남개발붐을 타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화가는 그림을 팔아 살아가야 한다는 철저한 신념이 있었다. 당시 잘 나가는 월급쟁이의 월급이 50만원이었을 때 하루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의 그림을 팔기도 했다. 지금으로 보면 2억~3억원 규모다. 김홍신, 김한길과 함께 방송리포터를 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타이밍이 척척 맞았던 것이다. 150여회에 달하는 국내외 전시도 이어졌다.
북두칠성과 빛-생명수

“미국 브라질을 비롯해 모로코 등 120여곳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 전시회 기간 중 현지 여행을 하면서 운명처럼 만난 것이 운석이었다.”

그는 하늘과의 인연이 질기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 하필 또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이란 말인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200여점의 수집품 중에 큰 것은 무게가 54kg이나 나간다.

“20여일간 사하라 사막을 헤매면서 발견한 물건이다. 사막 지프에 패러글라이더를 매달고 올라 사방을 쌍안경으로 훑어 찾아낸 것이다. 사막 모래 위에 까만 물체는 운석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남극도 세 번 가서 40여점의 운석을 발굴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점차 녹으면서 그 속에 숨어 있던 운석들이 검은 얼굴을 드러냈던 것이다. 단일한 색인 사막이나 빙하에서 운석은 눈에 쉽게 띄기 마련이다.

“2006년엔 아예 용인 수지에 우주지구박물관을 개관했다. 6년쯤 운영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문을 닫았다. 그림으로 번 돈을 까먹기만 한 세월이었다.”

그는 한동안의 외도를 통해 그림이 자신의 천직임을 깨달았다. 그림 이야기만 하면 여전히 신나는 홍조 띤 얼굴이 이를 말해 준다.

“요즘 들어 프랑스 시절의 이미지들이 새록새록 눈에 아롱거린다. 어느날 숙소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베란다의 장미 화분이 눈을 압도했다.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통과한 아침 햇살이 너무 강렬했다. 침대에 누워 빛의 생명력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대가들이 그토록 빛을 찾아 나섰던 이유가 이런 것일 게다. 우주의 빛, 생명의 빛이었다.”

근래 들어 그는 산속에서 우주의 빛 그림에 흠뻑 빠져 있다. 생명수 같은 이슬방울이 보이고 빛이 흐르듯 화폭에 색이 흘러 내린다.

우주-빛-생명수
작업실에서 그가 토파즈(황옥)를 하나 보여줬다. 속에 물방울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지구가 탄생할 때 생명수가 기적처럼 보석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미국 나사에 보내 6개월 만에 설명을 들었다. 세계적으로 기록은 한 건만 있는데 소재가 확인된 실물로 존재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모로코의 한 보석원석가게서 이 물건을 샀다. 생명수가 들어있는 것을 가게 주인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마주했을 때 바로 눈에 들어와 처음엔 착시처럼 느껴졌다.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의심도 했다. 무조건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손에 넣었다.

“물건 값을 지불하고 나와서 골목 커브를 돌아 호텔까지 5㎞를 달렸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뛰었다. 행여 가게주인이 생명수 존재를 알고 안 팔겠다고 무르자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는 속은 것이 아닌가, 내일 아침이면 생명수가 증발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숙소에 돌아와서도 전전긍긍했다. “서울에 와서도 2년간은 사라졌는지, 그대로 있는지 매일같이 살펴봤다. 이제야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구약성서 창세기 편에 보면 모든 물질과 생명체는 빛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산골 적막 속에서 빛의 울림을 본다. 우주의 빛이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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