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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넥센의 머니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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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1 21:09:03 수정 : 2018-06-01 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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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빈(브래드 피트 주연) 단장은 메이저리그 만년 꼴찌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2001년 정규시즌 2위에 올려 놓았다. 다음 해엔 리그 최초 20연승 신화를 쓰며 정규시즌 1위에 등극했다. 구단의 빈부격차가 심한 메이저리그에선 선수들 연봉 총액이 곧 승률과 비례하는 게 통설이다. 리그에서 두 번째로 가난하고 ‘오합지졸’을 보유한 구단이 거둔 성과로는 기적에 가까웠다. 비결은 철저한 데이터 분석이었다. 타율보다는 출루율에 주목했고, 젊고 잠재력 있는 선수를 영입해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했다. 야구팬에게 유명한 영화 ‘머니볼(moneyball)’의 줄거리다. 실제 빌리 빈은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았다. 이에 자극받은 보스턴 레드삭스는 오클랜드의 데이터분석 전문가를 스카우트해 불과 2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극복하고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2008년 한국 프로야구에 합류한 넥센 히어로즈는 자금력이 없어 머니볼을 도입했다. 프런트가 적극 나섰다. 박병호, 강정호 같은 선수를 발굴해 수백억원의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비를 받고 메이저리그로 보내 재미를 봤다. 외국인 선수도 저렴한 가격에 사들여 부가가치를 높인 뒤 국내외 다른 팀에서 좋은 오퍼가 오면 보내줬다. 모기업 없이 야구단을 운영해 새로운 경영 사례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넥센이 지난 10년간 선수 트레이드 뒷돈으로 무려 131억5000만원을 챙겨온 사실이 드러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구단 실질적 소유주인 이장석 전 대표이사는 횡령 등 혐의로 징역형을 받아 직무정지됐고, 이번 사태로 영구제명될 위기에 처했다. 넥센 구단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팬들은 분노하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다. 같은 종류라도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그 모양과 성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머니볼은 돈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저평가된 가치를 찾아내 적은 비용으로 승리를 얻어낸 멋진 실험이었다. 그러나 넥센은 뒷돈에 눈이 멀어 ‘한국식 머니볼’이란 오명을 남겼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트레이드 당한 선수들과 실망한 야구팬은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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