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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직업 다양했지만… 모두 상상 형상화하는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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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1 19:31:44 수정 : 2018-06-02 13: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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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4DX VR영화 ‘기억을 만나다’ 구범석 감독/“어지러움 없이 40분간 영상 감상/ 세상 없던 문법 새로 정리한 느낌/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받았지만/ 게임시장에 확신 느껴 한국으로/ VR 장점 극대화해 판타지 도전/ 건강한 콘텐츠 만들어가고 싶어”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를 연출한 구범석 감독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EVR 스튜디오에서 VR 콘텐츠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 감독은 “사람들이 많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건강한 VR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할리우드 시각특수효과 전문가, 사진작가, 광고감독, 전시감독, 촬영감독, 영화감독…. 남들은 제가 다양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늘 같은 일을 한다고 느낍니다. 모두 상상을 형상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제가 정말 즐거워하는 일이죠.”

지난달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세계 최초 4DX VR(가상현실) 영화 ‘기억을 만나다’를 연출한 구범석(39) 감독을 지난달 말 서울 강남대로에 위치한 EVR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그는 게임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회의실에 놓인 대형 TV화면을 보여주며 그는 곧 출시를 앞둔 게임을 소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사용자가 캐릭터가 되어서 이렇게 무대에서 밴드 공연을 할 수 있어요.”

영화 ‘기억을 만나다’는 40분짜리 VR 영화로 움직임과 냄새까지 느낄 수 있는 CGV의 4DX관에서 3월 개봉했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좌석점유율은 75∼80% 정도로 여느 인기 영화와 맞먹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주로 ‘신기하다. 그러나 불편하다’였다. 얼굴을 내리누르는 육중한 장비와 선명하지 않은 화질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관객이 어지럼 없이 일반 영화처럼 관람했다는 것만으로도 구 감독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VR 영화 작업은 일반 영화와 비교해 훨씬 복잡하다. 360도 화면에 빈틈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카메라에 렌즈가 최소 6개는 있어야 한다. 화면끼리 닿는 부분에 이격이 생기기 때문에 배우의 동선이 그 부분을 지나면 안 되며, 후반 작업을 통해 이격을 맞춘다. 촬영이 시작되면 스태프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는다.

장면 간 시선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주인공이 오른쪽으로 걸어가 관객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다음 장면이 왼쪽에서 시작하면 다시 고개를 크게 움직여야 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무술영화에서 합을 맞추는 것처럼 모든 장면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합을 맞춰 촬영했습니다. 기존 영상 제작보다 최소 5배의 품이 더 들었고 후반 합성 등 기술 난이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VR 영상을 잘못 만들면 보자마자 어지럼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데, 40분간이나 무리 없이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저희의 고민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요. 세상에 없던 문법을 새롭게 정리한 느낌입니다.”

VR 콘텐츠에 푹 빠져 있는 구 감독은 2000년대 초반 영화 ‘반지의 제왕’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 참여한 한국인으로 유명했다. 그때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학창시절 터미네이터, 쥬라기공원, 토이스토리 등을 보면서 CG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한국엔 그런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스무살 때 미국으로 갔죠. 당시 닷컴 붐으로 실리콘밸리가 인재들을 거의 흡수한 탓에 할리우드에는 CG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운 좋게 일찍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내 이름 세 글자는 올리고 오겠다’고 다짐했던 구 감독이 그곳에서 작업한 영화는 10편에 가깝다. 그중 ‘반지의 제왕’과 ‘황금 나침반’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까지 받았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는 딱 10년 만에 한국의 한 게임회사로 돌아왔다.

“20대 중반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좋아하는 일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창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부터 사진, 광고, 전시 등 다양한 방면으로 영역을 넓혔어요. 주변에서 ‘왜 할리우드를 떠나 한국 게임회사로 가느냐’고 했지만, 저는 게임시장에 미래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 미래가 지금은 VR 콘텐츠로 확장됐고요.”
지난 3월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사람들이 먹고 자는 시간 외의 대부분을 VR 안에서 보내는 미래를 그렸다. 구 감독은 현재 그 같은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VR는 분명 매력 있는 장르입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상상하고 원하는 것을 VR로 경험하며 느끼도록 건강한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영화도 다시 도전해 봐야죠. 멜로로 첫발은 뗐으니, 다음 장르는 VR의 장점을 극대화한 판타지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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