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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끓어 넘치는 사회 스러져간 넋을 위로하다

입력 : 2018-06-01 03:00:00 수정 : 2018-05-31 21: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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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여덟 번째 소설집 ‘새의 시선’ / 군사정권 맞서다 분신한 / 두 젊은이들의 아픔… / 용산참사·세월호 등 다뤄 / 많은 희생자들이 새처럼 / 훨훨 떠날 수 있도록 애도 / “넋 속으로 파고들다 보니 / 언젠가부터 작업 힘겨워”
여덟 번째 소설집을 묶어낸 정찬. 그는 “소설 작업이 힘겨워진 것은 언젠가부터 쓰는 행위가 넋을 견디는 행위가 된 듯한 느낌이 들면서였다”고 썼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설가 정찬(65)의 여덟 번째 소설집 ‘새의 시선’(문학과지성사)은 사회가 죽인 넋들을 위무하는 작품들이 주조를 이룬다. 참사가 또 다른 참사와 만나서 슬픔을 증폭시키고 이를 지켜보는 산 자의 가슴을 고통으로 떨리게 한다. 이 고통의 심연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하는 일 또한 예술의 책무라고 그는 쓴다. 2014년 늦은 봄부터 지난해까지 쓴 단편 일곱 편을 묶었으니 고스란히 세월호 참사 이후 정서가 담긴, 어쩔 수 없는 애도의 글들이다. 그는 “만장이 펄럭이는 세계 속에서 넋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넋들을 위로하고 보내는 중심 모티프는 죄 많은 세상 훨훨 떠날 수 있도록 상정한 ‘새’다.

“종우야 가거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엄마도 잊어라. 엄마를 잊지 않으면 죄 많은 땅도 잊지 못할 테니.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마라.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는 시신을 통해,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는 시신의 없음을 통해 죄 많은 땅을 비출 테니까. 네가 머나 먼 여행을 하는 동안 엄마는 죄 많은 땅을, 너를 사라지게 한 죄의 진창 속을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너를 그리워할 것이다.”

‘새들의 길’에서 아들을 세월호에서 잃은 엄마의 외침이다. 이 엄마는 일찍이 오빠를 잃었다. 그 오빠는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실종됐다. 1980년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헌신했던 이들 중 오빠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엄마는 오빠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날 새 브랜드 운동화를 사서 오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제의처럼. 세월이 흘러 오빠의 운동화 치수가 아들의 발에 맞게 됐을 때 수학여행 떠나는 아들에게 그 운동화를 신겨 보냈다. 아들이 그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 때 기쁘고 슬펐다.

2009년 용산 참사에서 불에 타 세상을 떠난 희생자를 목격한 사진작가 박민우는 표제작 ‘새의 시선’에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용산 참사는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다 분신자살한 김세진 이재호의 아픔과 연결된다. 이 분신을 지켜보았던 증인의 운동화 이야기는 죽은 이들이 옥상에서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날아갔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사진작가 박민우는 자신이 지켜보았던 용산 희생자들을 잊지 못한 채 자신도 옥상에 올라가 운동화를 신고 뛰어내린다. 김세진이 떨어져 죽은 게 아니라 새가 되었다고 여기는 그는 자신의 그 생각이 “희망, 아름다운 희망, 무서운 희망”이라고 고백한다. 불길을 견디는 건 희망뿐이라고, 그 불길이란 말은 진실로 바꾸어도 되는데, 인간이란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에 얼마나 뛰어난 전문가냐고 반문한다.

‘등불’에서도 1999년 씨랜드 참사에서 어린 딸을 잃었던 남자의 상처가 세월호에서 사라진 여인과 만난다. 이 남자는 딸을 잃고 아내마저 자살한 뒤 트럭 운전사로 떠돌다가 밥집을 하는 한 여인에게 겨우 자신의 죽음을 의탁하려 했는데 이 여인이 제주에 다니러 가다가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라지는 것들’도 같은 구도다. 화가 형조는 1980년대 광부를 그렸다가 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아 폐인으로 살다가 딸이 연인의 뱃속에 들어서자 몸을 추슬러 맹렬히 새를 그리다 죽었다. 후일 딸은 그 새 그림을 좋아해 책상머리에 걸어놓았고, 세월호에서는 엄마에게 아빠의 그림 속 새가 되어 만나러 가겠다고 익살스러운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미련과 그리움과 고통 속에서 헤매는 넋들이 새가 되어 자유롭기를 바라는 작가의 깊은 애도가 이 단편들에 배어들었다.

‘카일라스를 찾아서’에서는 “운명을 알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가 운명과 죽음을 내려다보고 있는 높은 존재를 향해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세로 간구하는 몰아의 모습이 불러일으키는 슬픔”을 말하고, 예술가의 숙명을 이야기하는 ‘양의 냄새’와 ‘플라톤의 동굴’에서는 “죽음의 심연을 견딘 예술가만이 궁극의 꽃을 품고 있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넋을 피할 도리가 없었으므로 그 넋을 견디면서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육신을 부여하는 것이 자신의 소설 작업이었다고, 정찬은 돌아보았다.

“넋에게 육신을 부여하려면 넋 속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넋 속으로 파고들려면 우선 넋을 견뎌야 했습니다. 넋을 견디는 힘이 넋 속으로 파고드는 힘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만큼 견뎠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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