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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간 19만건…네티즌 '놀이터' 된 청와대 국민청원

입력 : 2018-05-30 07:52:56 수정 : 2018-05-30 08: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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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하루 평균 684건씩 올라와 / 인신 공격 등 터무니없는 청원 봇물 / “청원 작성 조건 더욱 강화” 지적도 “야식 메뉴 좀 추천해주세요” “취업 좀 시켜주세요”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출범 100일을 맞아 신설한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에 온갖 청원이 난무하면서 ‘누더기’가 되고 있다. 네티즌들이 청원 게시판을 마치 온라인 커뮤니티처럼 장난삼아 이용하면서 정작 중요한 청원들이 묻히고 있어 사실상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다. 실명제 등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지난해 8월17일부터 이날까지 19만6418건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하루 평균 684건이 올라온 꼴인데, 욕설과 비속어 등이 담긴 청원들이 삭제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간 제기된 청원은 20만건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공간이지만 청원 대부분이 사회문제 제기나 정책 문제가 아닌 신변잡기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 등 특정인에 대한 비방글을 비롯해 중고거래글이나 유머 글까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엔 “연예인을 사형시켜달라”, “트럼프를 탄핵해달라” 등의 글도 올라와 논란이 됐다.

특히 언론을 통해 이슈화된 사안과 관련한 게시글이 적지 않다. 최근 비공개 촬영회에서의 성추행 등을 폭로한 유튜버 양모(24·여)씨 사건이 불거진 뒤 청원 게시판엔 “구속수사를 바란다”, “양예원 특별법을 제정해달라” 등 청원이 120여개 올라왔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관련해서도 비슷한 형태의 청원이 한달 새 650여개가 올라왔다.

물론 애초 취지에 맞게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게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청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체적인 문제 제기나 정책 방향 제언보다는 포털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처럼 사안에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내용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여기에는 네이버와 페이스북 등 아이디와 연동돼 가입이 쉽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점과 청소년과 20·30대 젊은 세대에서 주변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특이한 청원을 올리고 이를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리는 일이 많아진 점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청와대 국민청원을 이용한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이런 현상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정작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할 사안들이 게시글 홍수 속에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 워낙 ‘놀이터’처럼 변질된 탓에 청원 게시판 자체를 둘러보기 꺼려진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좌표 찍기’, ‘화력 지원’이 아닌 한 청와대 답변의 최소 조건인 20만명 서명은 극히 어려운 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이에 청원 게시판에도 “글 쓰는 자격을 검토해달라”, “이상한 게시글을 올리지 못하게 해달라”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실제 그간 네티즌 서명이 20만건에 이른 청원은 37건에 불과한데, 산술적으로 전체 청원 대비 0.0001% 수준이다.

지난 14일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올라온 모든 청원을 분석한 뒤 “국민청원이 약자들을 위한 호소가 직접 전달되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내놓은 청와대의 시각과는 꽤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에 청원 작성 요건을 더욱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게시글이 모두 익명으로 이뤄지는 탓에 장난 글이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거다. 청와대 청원 제도가 생기기 전 네티즌들이 주로 사용하던 국민신문고의 경우 공인인증서 등으로 실명이 확인돼야하는 등 가입 요건이 비교적 까다로운 데다, 게시글 작성 요건도 ‘현황 및 문제점’-‘개선 방안’-‘기대효과’ 등 구체적으로 나눠 올리게 돼 있어 의미있는 제안이 많이 올라왔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서도 국민청원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선전수단으로만 악용되는 그들만의 게시판(청와대 국민청원) 패쇄를 거듭 청원한다”며 “집단 조작이 난무하는 괴벨스의 나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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