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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만족’ 임실치즈테마파크
놋쇠 그릇에 담긴 구수한 된장찌개에 윤기 나는 흰 쌀밥, 그 옆에 은수저 한 벌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상 가운데에는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조리한 매운탕과 재첩을 한가득 넣은 전, 각종 산나물이 깔린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한 끼라면 이런 한정식이 먼저 떠오른다. 한식 외에 다른 종류의 음식은 이런 곳에선 어울리지 않을 듯싶다. 한데, 전북 임실에선 이런 한식 말고 맛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치즈다.

천안 호두과자, 성주 참외, 횡성 한우, 금산 인삼 등 지명만 들어도 자연스레 생각나는 특산물이 있다. 보통 우리 전통 식재료 등을 기반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지역 특산물이다.

반면 임실 치즈는 우리 전통 식재료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더구나 임실의 치즈가 왜 유명한지 이유는 잘 몰라도 ‘임실 치즈’라는 말은 자주 접해 어색하지 않다. 서양 식품을 대표하는 치즈가 어느 곳보다 토속적인 임실의 대표 음식으로 이름을 떨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실에서 치즈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치즈의 역사와도 똑같다.

1958년 6·25전쟁 직후 임실성당에 온 벨기에 출신 디디에 세스테반스 신부는 한국 이름 지정환으로 개명한 뒤 농촌계몽운동에 나섰다. 1966년 산양을 키워 산양유를 팔았지만 판매가 부진했고, 남는 우유를 버릴 수 없어 치즈를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1967년 지 신부가 프랑스 낙농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치즈 제조 기술자가 왔고,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카망베르 치즈를 만들었다. 그는 ‘우유로 만든 두부’라며 농민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임실 치즈공장을 설립한 것이 우리나라 치즈의 시작이다. 이후 농민들과 함께 치즈 생산 및 판매에 나섰고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16년 2월 특별공로자로 한국 국적을 받았다. 벽안의 의인의 도움으로 임실이 치즈 고장이 된 것이다.

임실 상성마을에 그려진 지정환 신부 벽화.
염소들이 테마파크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임실 치즈를 먹고, 보고, 느끼려면 임실치즈테마파크로 향하면 된다. 유럽하면 떠오르는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를 모티브로 건물 등을 조성했다. 치즈테마파크에서는 치즈 만들기 체험을 하고, 아이들이 산양·토끼 등 자연과 어울려 뛰어놀 수 있다. 쭉쭉 늘어나는 치즈를 만드는 체험에선 테마파크 강사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니 어렵지 않게 체다 치즈와 스트링 치즈, 모차렐라 치즈 등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너른 초원 자체가 놀이터다. 이곳저곳 마음껏 풀밭을 뛰어놀게 하면 된다. 롤러 미끄럼틀이 가장 눈에 띈다. 꽤 긴 거리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미끄럼틀로 어른들도 재미에 푹 빠져든다. 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내려다보는 맛도 일품이다.

치즈테마파크를 찾은 아이들이 롤러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전북 임실에서 맛볼 수 있는 치즈 돈가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치즈가 듬뿍 올라간 피자와 안에 치즈가 가득 든 돈가스를 먹어야 한다. 느끼한 것을 잘 못 먹더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김치도 같이 나온다.

치즈 만드는 법을 알려준 지정환 신부와 관련한 이야기는 상성마을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이곳이 지 신부가 농민들과 함께 치즈를 만든 마을이다.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치즈를 만들었는지 잘 그려져 있다. 지정환 신부가 첫 치즈를 뽑아낸 ‘임실 치즈공장’이 벽화를 따라가면 맨 꼭대기에 있다. 당시 치즈 보관장소 등이 잘 보존돼 있다.

상성마을에는 봄에 백로와 왜가리가 둥지를 튼다.
벽화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백로와 왜가리 떼다. 마을 뒷산에 둥지를 틀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매년 봄 백로와 왜가리 수백마리가 날아든다. 이곳에 백로들이 날아든 것은 구한말, 이 지방의 거부 진재황이 이곳에 백송 42그루와 느티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면서부터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천마리가 날아왔는데,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줄어드는 숲 때문에 그럴 듯싶다. 백로가 있는 나무와 그 뒤편 나무를 보면 확연히 차이가 느껴진다. 백로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친 나무는 초록빛이 거의 없다. 백로의 배설물 등으로 나무가 죽어가는 것이다. 반면 둥지를 틀지 않은 뒤편 나무는 초록이 완연하다. 아마 앞에 있는 나무가 죽으면 백로는 다음해 뒤에 있는 나무에 둥지를 틀 것이다. 그러면 점점 숲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막연히 떠오르는 임실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은 필봉농악이다. 임실 필봉마을에서 전승돼 온 농악으로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필봉 문화촌에선 다양한 문화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풍물놀이 체험은 물론이고 떡메치기, 한지공예, 탈춤놀이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임실=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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