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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대한제국공사관과 문화재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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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8 00:16:20 수정 : 2018-05-18 00: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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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년 만이다. 미국에 우리가 처음 세웠던 외교공관에 다시 태극기가 나부낀다. 오는 2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개관식에서다. 하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는 날이다. 쏟아질 관련 뉴스에 파묻혀 관심이나 끌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건 감격해 마지 않을 일이다.

1889년 조선은 백악관 인근 로건서클 내의 건물을 구입했고, 공사관을 열었다. 국권을 강탈한 일제가 건물을 5달러에 매입해 되판 1910년까지 공사관은 대미 외교의 전초기지였고, 자강외교·자주독립 의지의 한 상징이었다. 의미가 큰 곳이라 2000년대 들어 교포사회에서 역사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고, 2012년 10월 문화재청이 구입했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한 세기를 훌쩍 넘겨 맛보는 감격이 클 것인데, 개관식을 기다리며 한편 착잡함이 인다. 이런 경사를 다시 경험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공사관을 매입할 때 들인 예산은 35억원가량이었다. 당시 국내외 문화재를 사는 데 쓸 수 있는 ‘긴급매입비’ 50억원의 일부였다. 공사관을 우리 품으로 되돌리는 걸 가능하게 했던 이런 예산은 해마다 쪼그라들어 올해는 12억원에 불과하다. 지금 시점에서 공사관처럼 역사적 가치가 크고 의미가 깊은 문화재를 사야 할 상황이라면 돈부터 걱정해야 하는 한심한 지경인 것이다.

많다고 할 수 없는 50억원이 그마저 4분의 1 토막이 난 건 문화재 관련 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는 예산 책정 방식 때문이다.

예산은 당해연도에 불용액이 생기면 감액된다. 이런 방식대로라면 50억원을 유지하기 위해 문화재 구입이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예산을 들여서 살 만한 가치 있는 문화재가 언제든 있는 게 아니다. 예산 깎이지 않겠다고 깜도 안 되는 물건을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쓰지 않은 돈이 생겼고, 문화재 매입 예산은 조금씩 깎였다.

문화재 분야에서 이런 일이 적지 않은데 복원이 한 사례다. 원형에 얼마나 가깝게 되살리냐 하는 게 문화재 복원의 관건이다. 사전조사를 통해 원형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복원을 시작하지만 작업이 진행되는 중에 새로운 고증 자료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작업을 멈추고, 다시 한번 원형이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추정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그것은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책정된 예산을 기한 내에 다 쓰겠다고 새로운 자료를 무시하고 복원을 계속해 정체불명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는 건 물론이다.

일본은 문화재 관련 예산에 회계연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예산을 확보했으면 기한에 상관없이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해도 좋다, 제대로만 해라.’ 일본의 예산 책정 방식이 말하는 바다.

예산이 다일 수야 없지만, 그 돈을 써야 하는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숫자다. 공사관에 113년 만에 태극기를 다시 내걸 수 있게 한 50억원이 12억원으로 쪼그라든 사정, 그 안에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낮은 인식이 도사린 건 아닌지 묻게 된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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