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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워달라”는 상사, “하고 싶다”는 대표…못말리는 직장내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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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7 09:00:00 수정 : 2018-05-17 15: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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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스토리-甲甲한 직장⑦-ⓐ] 다양한 직장 내 성폭력 갑질 실태
<편집자주>

“회사 안은 전쟁터요, 회사 밖은 지옥이다.”

국가 및 사회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됐다는데,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이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전쟁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원인 또는 이유를 찾아가자면, 우리들의 삶이 가장 많이 머무는 직장도 그 연루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직장 앞에서 멈춰섰다는 지적도 많으니까요.

오너 갑질,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공무원 갑질, 대기업 및 본사 갑질, 을의 갑질, 임금 갑…질, 괴롭힘 갑질, 잡무 갑질, 노동시간 갑질…. 참 말도 많습니다.

세계일보는 우리들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부조리한 실체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보도는 직장인들의 ‘온라인 해우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공동기획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참여 부탁합니다. 혹시 자신이 겪고 있는, 또는 주위에서 겪고 있는 갑질이나 괴롭힘, 부조리가 있다면 그 증거와 함께 알려주십시오. 확인이 가능하고 공유할 가치가 있다면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보를 보내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번호 02-2000-1181.
“(방송) 제작사 대표가 회식 자리에서 다른 제작진들이 없을 때 폭탄주를 억지로 먹이고 껴안고 신체 부위 위아래를 만졌다. ‘넌 내가 만졌으니 이미 나와 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결혼은 했지만 다른 여자들과 많이 잤다’며 다음에 나를 또보면 나와 잘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껴안고선 내가 뿌리치려고 하자 ‘아빠라고 생각하고 안아보라’고 하더라.”

이보다 더 기상천외한 말이 있을까.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갑질의 온상으로 꼽히는 방송계에서 최악의 갑질로 이같은 ‘아빠 갑질’을 꼽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성폭력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노골적인 시선에 불쾌감을 느끼고 술집 아가씨 취급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신고를 해도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2차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이 2016년 1년간 전화, 메일, 방문 등의 방법으로 진행한 총 391건의 상담 내용 중 전체의 79%에 달하는 309건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사례였을 만큼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 빈번하게 성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건 기본...“재워달라” 요구도

직장갑질 119와 여성가족부, 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 내에서 불쾌하고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회공헌기관에 재직 중인 A씨는 상사의 노골적인 시선에 가방으로 다리를 가리고 다녀야 했다. 상사는 A씨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다리가 참 육상선수처럼 튼튼하구나” “참 짧은바지를 자주 입고 다닌다. 잘 어울린다” 등의 발언을 했다. 상사는 또 회식이나 회의 때 남자 직원이 옆에 앉으면 “왜 맨날 내 옆에는 항상 남직원만 앉는 거냐, 여직원이 오라”며 자리를 억지로 바꾸게 했다. 상사는 틈만 나면 A씨의 몸을 만지려고 했다고 한다. A씨는 “다른 사무실을 쓰는 나에게도 이렇게 성추행이 이뤄졌는데 같은 사무실을 쓰는 여직원들의 고통은 더했다”며 직장갑질 119에 제보했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3년마다 성희롱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5년 발표된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는 약 50명의 여직원이 근무하는 생산라인의 관리자 B씨의 파렴치한 행태가 공개됐다.

B씨는 회식 자리에서 여짂원들의 엉덩이, 허리, 어깨 등을 만지고 회식이 끝난 후 여직원의 손목을 붙잡고 재워달라며 요구했다. 심지어 여직원 두 사람이 결근하자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회사 기숙사 개인실을 열쇠로 따고 무단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여직원을 아가씨 취급하는 회사 대표 “너랑 하고 싶다”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의 2016년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많은 회사 대표들이 여직원을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1년째 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C씨는 아가씨가 나오는 술집에 다녀온 일을 자랑하듯이 종종 이야기하는 회사 대표의 말을 듣곤 했다. C씨는 회식 때 노래하면서 술을 먹는 단란주점이랑 비슷한 구조인 곳에 자주 가는데 “(대표가) 노래하라고 시키는 건 당연하고 술 따르라고 한 적도 정말 많았다”며 “노래가 끝나면 여직원에게 안기라는 식으로 팔을 벌려서 어쩔 수 없이 안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직원들을 아가씨 취급하면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요구한다”며 “그런 회식 자리를 참을 수 없어 빠지기라도 하면 업무적으로 부당한 피드백이 왔다”고 덧붙였다.

직원이 5인 미만인 소규모 회사에 재직 중인 D씨는 사장으로부터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다. D씨는 사장의 차를 함께 타고 가는 상황에서 사장이 “너랑 하고 싶다” “속살이 하얗다” “가슴이 보기보다 크다” 등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D씨는 자신의 몸을 만지는 사장을 웃는 얼굴로 거절하기도 하고 불쾌한 이야기도 웃어넘겼지만, 사장은 자꾸 “하고 싶다”고 말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여성민우회를 찾았다.
◆성폭력 피해 신고해도 해결은커녕 가해자 옹호만

직장 내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보다 더 보호받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같은 팀 직원에게 회식 자리에서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는 직장인 E씨는 다른 여직원들과 이야기해보고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E씨는“(이 사실을) 인사팀에게 알렸지만한 달 넘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다시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비공식적으로 가해자와 직속 상사에게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E씨는 이어 “상사에게 가해자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켜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런데 조치는 되지 않고 상사가 찾아와 성희롱 신고를 취소하라고 하더라”고 가해자 편에 섰던 직장 상사를 비판했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11월 발표한 보고서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한 여직원은 성희롱 2차 피해도 모자라 회사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입사한 이후 직속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한 F씨는 탄원서를 제출해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이후에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도록 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나중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인근 사무실에 홀로 격리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한다.

◆“초기 대응이 중요…법조항 인식하고 적극 대응해야”

직장갑질119의 스텝으로 활동 중인 김유경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직장 내 성폭력 갑질 관련,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가해자는 위계질서를 이용한 성폭력이 잘못됐다는 인식 자체가 없고 피해자는 상대적 ‘을’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쉽게 공론화하거나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직장 내 직급이 높은 상사가 직급이 낮은 직원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 근절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성폭력 갑질을 당한 피해자들에게는 “대응이 늦어질수록 가해자는 상호 간 합의된 행동이었다고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수치심을 느끼는 일을 당했을 때 관련 증거를 남겨 초기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김 노무사는 오는 29일부터 시행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료의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직장 내 누구라도 해당 사업주에게 신고할 수 있고 신고받은 사업주는 지체 없이 사실 확인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들어갔다”며 “기존의 한계들을 극복할만한 처벌 조항들이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원래도 있었지만 성희롱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 당사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더 구체적으로 열거 됐다”며 “근로자들은 강화된 법조항에 대해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공동기획> 세계일보·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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