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은행은 20년 넘게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했고 연체 기록도 없어서 방문 전만 해도 내심 우대금리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필자의 신용등급이 턱없이 낮게 평가돼 있었다. 담당 직원조차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본점 신용등급 관련 부서에 문의해봤지만 똑부러진 답변은 듣지 못했다. 한동안 카드 사용 내역이 없는 점이 신용등급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추정뿐이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효율적 수단이라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오랜 충성고객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반발심이 일었다. A은행이 필자의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는 지천에 널려 있는데도 은행 측은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해 한번 산정된 등급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필자가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신용카드를 다시 신청해서 열심히 긁어대는 일뿐이었다. 인공지능이 그걸 인식해서 필자에게 우량 고객 등급을 부여할 때까지 말이다.
조남규 경제부장 |
알고리즘은 양날의 칼이다. 빅데이터 속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진주를 찾아내는 것도, 위험한 금융상품을 안전한 상품으로 포장해주는 것도 알고리즘을 통해서 진행된다. 우리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잘못 설계된 알고리즘이 우리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지켜봤다. 알고리즘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의 가치를 눈덩이처럼 키우는 데는 능숙했지만 막상 금융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쓰레기 채권들의 가격조차 제대로 산정하지 못했다. 그때 무너진 시장을 바로잡은 주체는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이었다. 알고리즘이 탐욕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알고리즘을 감시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최근 네이버는 댓글 논란의 와중에 공정성 시비가 일자 인공지능이 뉴스를 편집하고 배열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궁여지책일 뿐 옳은 방향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뉴스 편집 배열은 자칫 이용자들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 속에 가둘 수 있다. 뉴스 편집, 배열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데이터 업계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말이다. 제아무리 좋은 알고리즘도 잘못된 데이터가 입력되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점을 경계하는 말이다.
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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