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기자와 만납시다] '특수교사' 생활 29년…아이에게서 '삶의 행복'을 배웁니다

입력 : 2018-05-12 08:00:00 수정 : 2018-05-12 10:30:0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자라면서 미래에 슈바이처 박사처럼 살자는 꿈을 갖게 됐다. 그리고 특수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서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우리 학생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함박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 조금만 정이 들어도 금방 ‘최고’라며 엄지를 든다.

삶의 만족은 아주 작은 게 채워질 때 느껴진다. 등하굣길 아이들에게 종종 인사를 하는데, 일부러 내게 와서 인사를 하고 가는 학생도 있고 멀리서 달려와 인사를 해주는 아이도 있다. 자폐학생 중에 인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인사를 강요하면 화도 냈다. 그런데 작년에는 못 본 척하고 피해가던 한 학생이 요즘은 내게 인사를 해준다. 진심은 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0년에 만났던,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심현지라는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한 캠프에서 인연이 닿았는데, 초등학교 교사였던 학생의 어머니께서 딸을 특수학급에 보내기를 거부하셨다. 계속된 설득으로 딸을 우리 학교에 보내시기는 했지만, 내가 다른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함께 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는 정도로 인연을 이어가는 중인데,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고맙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 답답하다.

지금 들어가는 반 중에 자기 목을 손바닥으로 치는 학생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아플 것 같아서 목에 손을 대주면 행동을 멈추기에 ‘관심이 필요한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닐 때가 많았다. 행동을 해석하기가 어려워서 답답하다.

소통이 잘 될 수 있게 돕는 게 특수교육인데 속상하다. 우는 갓난아기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할까. ‘도대체 왜?’라는 생각 때문에 울고 싶을 때가 많다. 한 번은 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면서까지 울부짖는 아이를 보았다.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는 데도 원하는 것을 맞춰줄 수가 없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봤다. 어머니께서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세상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사랑이 꽃피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누구나 살 만한 가치가 있기에 존중받는 세상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가 되고 싶다.

 

서울 구로 정진학교 이성애 수석교사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래픽=양혜정 기자.


학부모와 관계에서는 ‘소통’에 중점을 둔다. 서로 모르면 오해가 생긴다.

사람이기에 섭섭함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서로가 진심으로 같은 방향을 본다면 오해는 이해가 될 수 있다. 진심으로 학생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사로 비춰지면 실책도 이해가 되는 관계인 것 같다. 항상 학생과 부모에게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자고 생각한다.

학생은 교사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학부모는 교사에게 ‘빨리 말을 하게 되었으면’ 혹은 ‘빨리 걷게 되었으면’ 등의 치료적인 접근을 바랄 때가 많다.

사실 가장 불안한 점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어떻게 살까?’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어릴 때는 안쓰럽고 아직 어려서 내가 해주면 된다는 생각이 많다. 그러나 청소년기로 접어들고도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아기가 아닌 학생으로 대하셔야 해요” 또는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려주셔야 해요”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특수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더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의 변화가 금방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학기 초와 말이 다를 때가 있는데 참 뿌듯하다.

일반교육과 특수교육 모두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기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해석해서 가르친다는 게 다르다면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스승은 ‘삶의 동반자’다.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때로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조언자가 될 수도 있다. 교육 대상자들에게 신뢰를 주며, 그들이 믿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예전에 우리 딸의 담임 선생님을 뵌 적 있다. 그분께서 내게 부럽다고 하셨다. 일반교사보다 특수교사가 더 훌륭하다고 딸이 말했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 정진학교 중등교정. 정진학교에는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등학교(6·3·3개년)과정, 전문대와 유사한 ‘전공과(2개년)’ 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지적장애(총 34학급)와 지체장애(총 15학급) 학생 등 총 291명이 다니고 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더 가지려고 하는 삶의 태도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고 삶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것을 내놓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움켜잡으려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이 가져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주변만 깨끗하고 편리하며 구분된 터를 만든다고 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만 아니면 되는 것처럼, 우리끼리만 모여서 사는 걸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러분, 우리 함께 삽시다. 더불어서 같이 삽시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과도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갑시다.

특수교육을 한다는 것은 ‘사도의 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명예를 바라면 안 된다. 돈을 벌 수도 없다.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힘들다. 그러나 가치는 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이 기사는 올해로 특수교사 경력 29년째를 맞이한 서울 구로 정진학교 수석교사 이성애(52)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원글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이성애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