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소통과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원칙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접근 방식의 차이는 명확했다. 3국 정상회의에 이어 열린 한·일, 한·중의 양자 회담에서 일본은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비핵화(CVID)를 강조했고, 중국은 단계별 상호 행동에 방점을 뒀다.
결국 일본과 중국의 견해 차이로 인해 정작 3국 공동선언문은 회의 종료 후 12시간 반 만에야 발표할 수 있었다. 7000자가 넘는 공동선언문 전체 분량에 비해 한반도 비핵화 원칙 확인은 단 4줄에 그쳤다. 9일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의 평양 방문과 북한에 억류됐던 3명의 한국계 미국인을 대동한 귀환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회담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의 걸림돌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검증 방식과 상호 신뢰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 이행 과정의 ‘단계별·동시적’ 세분화는 시간 지연 가능성과 검증 방식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취약하다고 본다. 북한은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 해소 이전에는 미국이 요구하는 핵 폐기 이정표에 덜컥 서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5년 동안 되풀이됐던 북핵 관련 합의와 파기의 악순환이 초래한 상호 불신의 결과다.
설사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합의 이행 과정에서 양국의 상호 불신은 언제든지 분출해 합의를 뒤덮어 버릴 수 있는 불확실성과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다. 북·미가 상호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북핵 해법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청사진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가 합의와 파기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현실로 안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한·중·일 3국의 실효성 있는 ‘보증 체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을 위해 합의하더라도 그 이행에는 복잡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합의 이행과정에서 북한이 검증의 장애를 조성하거나 관련 시설을 은폐할 경우, 언제든지 이해 당사국 모두가 동참하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반대로 북한이 합의 사항을 준수할 경우, 북한이 우려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확실한 ‘보증 체제’가 가동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은 이 같은 ‘보증 체제’ 마련에 유리하지 않다. 중국은 지난 40여일 동안 두 차례에 걸친 북·중 정상의 만남으로 한반도 문제에서의 지분을 확보해 다소 느긋한 입장이며, 일본은 한반도 정세 흐름에 자국의 이해관계를 접목시켜 편승하는 분위기다. 러시아는 방관자 입장에서 머물고 있다. 이 와중에 북·미 간에는 서로의 진의 확인을 위한 기싸움이 치열하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학 |
모처럼 실천적 의미를 지니게 된 한국 정부의 ‘운전자 역할’은 북·미 정상회담 주선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중·일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보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 북·미 합의와 한·중·일의 ‘보증 체제’가 두 바퀴로 움직여야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한반도의 봄이 꽃을 피울 수 있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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