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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은 죽음의 경계조차 허물고 언젠가 만날 것”

입력 : 2018-05-11 03:00:00 수정 : 2018-05-10 21: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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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신작 소설 ‘프롬 토니오’ /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별한 / 이들을 위한 위무·애도의 서사 / 환상과 시적인 문체 돋보여 / “죽음 저너머로 떠나는 이는 /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품고 / 남겨진 자는 떠나보내지 않고 / 기억 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보고 싶지만 이승에서는 불가능한 상태, 그것은 어느 일방의 죽음일 경우가 태반이다. 살아 있어도 어떤 사연 때문에 영영 만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살아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숨이 붙어 있다는 표현에 불과하다. 간절하게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상태란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경계조차 허물고 그리운 사람을 만날 방도는 없을까. 정용준(37) 신작 ‘프롬 토니오’(문학동네)는 그리운 이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모든 이를 위한 위무와 애도의 서사다. 환상과 시적인 문체가 돋보인다.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위태로운 감정은 사라지고 우정이라는 안전한 감정만 존재하는 평등하고 밋밋한 세계. 나는 알게 됐다. 왜 유토의 생물들이 그토록 단단한 슬픔을 지니고 있는지, 마음 깊은 곳에 암석과도 같은 허무를 지니고 사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존재의 위협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의미하게 남겨질 거라는 예감은 어떤 초월적 고통을 준다. 절망 한가운데서 마모되지 않는 껍데기만 텅 빈 육체로 남겨질 것이다.”

간절히 그리운 이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무와 애도의 서사를 시적인 문장으로 음각한 소설가 정용준. 그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이 나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어떤 새벽엔 근사한 옛날 사람에게 긴 편지를 받았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썼다.
문학동네 제공
토니오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을 하다 바다에 떨어져 실종된 인물이다. 그는 바다 밑에서 ‘유토’를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선다. 유토란, 말 그대로 천국 같은 유토피아다. 아무리 아름답고 죽음이 사라진 공간이라지만 이곳의 주민들은 ‘지상에서 말하는 허무, 그 이상의 극단적인 허무의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생의 실감도 없고 몸도 마음도 아무 의미가 없는 허전하고 허무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죽어서 다시 한 번 죽으려 한다. ‘유토의 쌍생이자 형제’인 ‘우토’는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모여 있는 세계다. ‘죽을 수 없어서 멈추는 것’이고 ‘멈춘 상태로 영원한, 죽음을 모방한 삶’이 전개되는 곳이다.

토니오는 유토에서 흰수염고래의 도움을 받아 50년 만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그이 또한 지상에 남겨두고 온 연인 콘수엘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해갈할 수 없어 죽어서도 다시 죽으려는 우토행을 감행했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대서양 화산섬 마데이라 해변에 고래 수십 마리가 올라와 죽었는데, 그중 거대한 흰수염고래 입에서 토해져 나온 사내가 토니오였다. 미국인 화산학자 시몬이 그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보호한다. 시몬과 같이 연구하던 앨런이라는 여성은 잠수 중 실종됐는데 그가 구한 기이한 토니오라는 생명이 바다 밑에 들어가 그녀의 목걸이까지 제시하며 죽은 연인의 목소리를 전한다. 실종된 연인 때문에 폐인처럼 살았던 시몬은 비로소 토니오라는 존재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시몬과 함께 생활하는 일본 지진학자 데쓰로도 처음에는 토니오라는 존재를 의심하지만 시몬을 도와 그의 연인 콘수엘라를 찾는 여정에 동참한다. 데쓰로도 고베 지진에서 아버지와 여동생과 조카들을 상실한 인물이다. 연인을 바다 밑에 잃어버린 사내와 지진으로 혈족과 이별한 사내 들이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바다로 추락했던 50년 전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줄거리다. 그 인물 토니오는 애써 기억을 되살려 자신의 생전 이름을 천천히 발음한다.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와 같은 이름이다. 그를 지상에서 기다린 연인의 이름도 소설과 같은 콘수엘라였고 그녀는 생텍쥐페리를 생전에 ‘토니오’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토니오는 말한다. “떠나는 자도 남겨진 자도 같은 이유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흰수염고래 입에서 그를 발견했던 시몬은 말한다. “나는 토니오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건 그가 이곳에 돌아오기 위해 시간을 건너고 바다를 건넜다는 겁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정용준이 말했다. “이 소설을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동안 내게도 세계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바다에 빠진 사람들과 자기가 미워 스스로 죽은 자, 불과 얼음 속을 걷는 자들과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이들. …피곤하고 피로하여 깊은 물속을 떠도는 물그림자 같은 것이 되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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