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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대통령의 ‘비핵화 길동무’는 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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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9 00:34:07 수정 : 2018-05-09 00: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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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지각변동 속 ‘야당 패싱’ 흐름 / 보수 세력 끌어안는 대담한 발상 고민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검토했던 이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책에 “남북관계 발전을 초당적으로 추진해 보자는 대담한 발상이었다”고 썼다. 여야 대립이 극심한 정치 현실 탓에 검토로 끝났지만 정권에 따라 냉온탕을 오가는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진 않다. 문 대통령이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절차를 밟겠다는 것도 이번 합의사항이 차기 정부에서도 효력을 발휘하도록 못을 박겠다는 의도다.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공동선언’, 노무현정부에서 이뤄진 ‘10·4선언’이 정권교체 후 종이쪽지로 전락한 데 따른 학습효과다.

판문점 선언이 국회 비준동의를 받으려면 야당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여권 노력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상회담 당일 판문점 만찬은 ‘야당 패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4·27회담을 기록영화로 방송한 북한 조선중앙TV는 만찬 영상을 소개하면서 “여러 정당 대표가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번 회담을 “김정은 최고지도자의 조국통일사의 불멸의 업적”으로 홍보하는 북한이 ‘여러 정당 대표’를 축하 사절로 포장한 셈이다. 실제로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만 참석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정당 대표가 아니라 1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주역으로 초대받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야당 대표들은 초청자 명단에서 빠졌다. 
황정미 편집인

북핵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문·김 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1, 2차 남북정상회담과는 차원이 다르다.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은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다. 회담 결과에 따라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인 한반도 운명은 달라질 공산이 크다. 판문점 회담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안보·외교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에 국정의 한 축인 야당은 ‘방관자’로 밀려나고 존재감을 잃었다. 청와대, 여당의 말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정말 믿을 만한지, 하나둘 군사적 긴장조치를 풀어도 괜찮은 것인지, 종전선언을 한다는데 한·미동맹이 무력화하는 것은 아닌지 국민 의문을 대신해 묻고 따져야 할 야당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최근 안보 국면에서 문재인정부가 ‘노무현 시즌2’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준 건 미국 트럼프정부를 대하는 태도였다. 대북 강경책 일변도의 트럼프정부와 발을 맞추고 “김정은을 회담 테이블에 앉힌 건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자주파 목소리가 컸던 노무현정부 때와는 다른 전략이다. 노무현정부 초대 비서실장인 문희상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옆에서 훈수 둔 일본, 중국까지 공을 다 돌려” 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로서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김정은의 결단력도 여권 인사들의 칭송 대상이다. 유독 야당만 천덕꾸러기 신세다. 홍 대표는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장기집권하길 기도한다”는 조롱을 받는다.

한·미 전문가들이 예상하듯 북 비핵화 과정은 멀고 험난한 여정이다. 트럼프정부, 문재인정부 임기 내 매듭지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습·종신체제인 북한과 달리 우리는 국민투표에 따라 정권이 바뀐다. 박근혜정부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김대중(DJ)맨’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 “보수세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 통일기반이 된 ‘동방정책’은 사민당 출신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시작했지만 그 결실을 맺은 건 보수당 정권인 헬무트 콜 총리였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만찬에서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북한 속담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과 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됐다”고 했다. 좋은 길동무라면 바라보는 목표가 같아야 한다. 두 사람이 말하는 ‘비핵화’가 같은 것일까. 문 대통령이 가리키는 한반도 평화와 김정은이 얘기하는 ‘조국통일’은 또 어떤가. 시간이 답해 줄 것이다. 분명한 건 진보, 보수정권을 떠나 북 비핵화는 우리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라는 점이다. 야당을 길동무로 삼는 대통령의 ‘대담한 발상’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한반도 운명을 김정은이 아닌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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