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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어른은 혼낸다…자기가 어린이였던 걸 잊은 것처럼

입력 : 2018-05-05 08:00:00 수정 : 2018-05-04 16: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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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저번에 비행기 탔을 때 어땠어? 뒤에 아기가 발로 의자를 차서 힘들었지? 지금도 똑같아. 의자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 앞에 앉은 분이 힘들어하실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엄마의 말에 아이는 “네”라고 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방지축 남자아이, 한창 호기심이 많아 창문을 내다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아들을 차분하게 달랜 엄마는 아이의 기분을 어루만지기 위해 열차 객실과 객실 사이를 잇는 중간 칸에 다녀오곤 했다.

10여분 뒤, 엄마와 시골역에 내린 아이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언제까지 오늘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을까? 최근 기자가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에서 본 광경이다.

“어허 뛰지 말랬지! 그러다 다쳐!”

서울의 한 박물관 앞 광장에서 뛰는 딸을 보며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 귀에 엄마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결국 딸을 잡은 엄마는 왜 말을 듣지 않느냐고 말했다. 엄마의 꾸중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시무룩한 아이의 표정과 눈꼬리가 올라간 엄마의 얼굴이 오가는 시민들의 발길 속에 조금씩 묻혀갔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서 ‘다치지만 않으면 괜찮겠지’라는 결론을 끌어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아이는 광장에서 뛰고 싶고 “그러다 다쳐!”라는 엄마 앞에서 다치지만 않으면 모든 게 괜찮다고 생각했을 거다.

공중예절을 잘 지키게 차분히 이유를 설명한 엄마, 앞뒤 설명 없이 다친다며 주의만 준 엄마. 우리는 두 사람에게서 어떤 차이점을 볼 수 있을까?



아동전문가들에 따르면 아이는 어른의 말을 귀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듣는다. 어른의 표정에서 의미를 안다는 뜻이다.

광장에 나온 엄마가 다친다는 말 보다 뛰다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먼저 전달했다면, 딸은 엄마의 말에서 더 깊은 뜻을 느낄 수도 있었을 거다. 외출 전에 주의사항을 밝히고, 아이에게 이전 설명을 상기시켰다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른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아이를 주의시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모의 언성은 조금씩 높아질 수 있다”며 “‘화’라는 형식을 빌리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효과가 반감할 수 있으므로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외출 전에 아이에게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면 안 될지 충분히 설명하면 좋다”며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말했던 내용을 상기시켜야 아이가 생각하게 이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치니까 하지 마라’는 말은 결국 아이에게 다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기회를 주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공중도덕과 관련한 사례를 빌려 임 대표의 설명을 소개했지만, 무조건 혼내기보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말하는 게 좋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외 많은 상황에서도 아이 가르치는 어른들의 태도와 통하는 원리로 볼 수 있다.

어떤 부모는 ‘하지 마라’는 금지어가 아이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자율성은 △해야 할 것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한 후에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임 대표는 “우리 아이가 누군가에게 대우받기 위해서는 일단 부모가 먼저 잘 가르쳐서 사회에 보낸다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태도로 아이의 습관을 잡아준다면 부모의 마음이 아이에게 더욱 잘 전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명대사다. 혹시나 자기가 어렸던 것을 잊고 자녀를 가르치거나 혼낸 적은 없었는지, 어른이니까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한 듯하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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