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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의 빼앗긴 권리] 투표소 1층에 있어도 경사 높고 접근 불편 … 한표 행사 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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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1 19:30:55 수정 : 2018-05-01 19: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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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우리도 국민" 230만의 참정권
6·13지방선거 유권자 5.7%가 장애인/ 거동 불편한 중증장애인도 1.2% 달해/“힘들게 투표해야 하나… 포기 생각 들어”/ 선관위 “임시기표소 설치·도우미 배치”
1층에 위치·엘리베이터 설치 등만 강조/ 외부환경 탓에 접근 못 하는 곳도 많아/ 수원지역 점검결과 47%서 문제점 발견/“참정권 보장 위해 환경평가 필수” 지적
평소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장애인 이모(42)씨는 지난해 대통령선거 투표를 생각하면 고생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여서 투표소가 설치된 학교를 잘 몰랐던 그는 선거일 전에 미리 전화를 걸어 휠체어로 투표소에 갈 수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 ‘투표소는 1층’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의 말에 안심하고 투표소로 향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학교 근처에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었던 것이다. 어렵게 투표소에 전화 연결이 됐지만 이씨를 도와줄 직원이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내리막길은 휠체어로 이동하기가 위험해 투표가 끝난 뒤에는 한 직원이 이씨를 업고 언덕길을 내려왔다. 이씨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며 “이렇게까지 힘들게 투표해야 하나 싶어 투표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모의사전투표 체험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장애인 유권자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한 장애인이 모의사전투표 체험을 하고 있다.
뉴시스
6·13 지방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투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소중한 권리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투표소 인근의 물리적 환경 때문에 투표소에 접근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권리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1%는 중증장애인

30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의 전체 유권자는 4200만명으로, 이 중 장애인은 240만명(5.7%)이다. 유권자 20명 중 1명가량은 장애인이란 뜻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장애1·2등급)은 52만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1.2%에 달한다.

이 ‘1%’를 위한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선관위에 따르면 올해 지방선거의 사전투표소(6월8∼9일) 3512곳 중 투표소가 1층에 설치되거나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82.7%(2904곳)다. 사전투표소 6곳 중 1곳(17.3%)은 휠체어로 투표소에 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선거 당일에 설치되는 투표소 1만4133곳 중에서는 237곳(1.7%)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2층 이상에 설치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모든 투표소를 1층 혹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 설치하려고 노력하지만 건물 확보가 쉽지 않다”며 “1층에 임시기표소를 설치하고 도우미 직원을 배치해 장애인들이 투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증장애인들은 집에서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 당일 중증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콜택시와 휠체어 리프트 차량을 지원할 예정이지만 문제는 규모다. 지원은 각 시·도에서 하기 때문에 지역 사정에 따라 규모에 차이가 있고, 절대적인 규모도 장애인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선관위에 따르면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국에서 953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는 881대의 차량이 지원됐다.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지원 규모는 비슷할 전망이다.

지체장애인 서모(50)씨는 “예전에 투표하러 가려고 콜택시를 불렀다가 2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 사람은 투표소에 가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며 “장애인 콜택시는 워낙 적어 평소에도 부르기 어렵다. 대폭 확충되지 않는 이상 중증장애인들을 모두 커버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투표소 인근 환경 조사도 필요

더 큰 문제는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다. 투표소가 1층 혹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에 있다고 하더라도, 외부 환경 때문에 해당 건물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건물 인근 보도블록이 패었거나 경사가 심해 휠체어를 타고 접근하기 어려운 투표소가 많지만, 선관위의 장애인 편의 관련 통계에는 이런 실태는 담기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원시인권센터가 수원지역 투표소 예정지 306곳을 대상으로 장애인의 투표 편의 등을 조사한 결과 146곳(47.7%)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70곳(22.9%)은 투표소 출입구 문턱이 높고 좁아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했고, 22곳(7.2%)은 100m가량의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 등 투표소 주변에 경사로가 있었다. 68곳(22.2%)은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다. 수원시는 센터의 권고를 받아들여 입구에 기표소를 설치하는 등 시설을 개선하고, 1곳은 투표소를 다른 곳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 같은 실태조사와 후속조치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지체장애인 김모(49)씨는 “투표소가 1층에 있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가려면 고려돼야 할 점이 훨씬 많다”며 “선관위는 투표소의 90% 이상이 1층이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부분만 강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 장애인이 팔목에 차는 특수형 기표 용구를 사용해 모의투표를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휠체어 경사로도 마찬가지다. 선관위는 투표소 건물에 휠체어 경사로가 없으면 임시경사로를 설치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건물에 휠체어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없어 보이지만 일부 투표소는 이용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된다. 김씨는 “몇년 전 투표소에 갔더니 계단 위에 나무판자를 깔아 임시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며 “경사도 높고 주먹구구식으로 설치돼 이용하기 무서웠다. 가족이 도와줘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장애인단체들은 투표소 환경평가 때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를 넘어 △버스정류장·지하철역 등에서 투표소까지 가는 접근성 △투표소 주변의 장애물 여부 △투표소 출입구 경사로의 경사 △출입구의 폭이 휠체어가 통과 가능한 정도로 넓은지 △장애인 화장실 설치 여부 △점자 블록 설치 여부 등 다각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 정책이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장애인유권자연맹 관계자는 “투표소 접근 환경 개선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유모차를 끌고 가는 유권자, 임산부 등 모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장애인을 위한 시혜시설이라기보다는 모든 국민을 위해 꼭 개선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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