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성 지음/한길사 |
북한 핵 위기에 관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한림대 정외과 교수인 저자는 30여년간 북핵과 통일 문제에 천착해 온 연구실적을 이 책에 망라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의 정부 문서와 유력 싱크탱크가 만든 보고서를 인용해 ‘팩트 체크’도 충실히 해냈다.
저자는 1996년 제네바합의 파기부터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북핵 위기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특히 지금까지 미국의 잘못된 ‘북한 인식’에 주목한다. 잘못된 북한 인식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경우다. 부시 행정부는 대선 직후 개표 조작과 9·11테러로 코너에 몰린 나머지 나름의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북한 문제를 다뤄왔다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특히 2001년 3월 김대중·조지 부시 정상회담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내 보수 언론은 한·미 간 북한 인식에서 삐걱거렸다며 김대중정부를 나무랐지만, 사실은 부시 행정부가 미리 짜놓은 각본이었다는 것.
2001년 3월 7일 낮 12시경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오찬을 하러 가기 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부시는 북한에 대해 극도의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한·미 정상의 만남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앞서 부시 행정부는 이미 제네바합의 폐기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저자는 미 정부 문서를 근거로 “당시 부시 행정부는 미리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정해놓고 그것을 정당화할 명분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부시 행정부는 출범 초인 2001년 초부터 북한을 긴장시켜 핵 프로그램에 집착하도록 유도했다. 말하자면 토끼몰이였다는 것.
2001년 3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이 DJ·부시 회담은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으로 기록되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저자는 “북한 핵 위기는 지극히 (미국 내) 정치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북핵 위기를 이해하려면, 미국내 정치적 상황과 연계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풀이한다.
향후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저자는 “미국의 핵타격 위협 등 적대적 군사정책을 철폐하고, 평화협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장치로 보장한다면 북한은 비핵화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의 모든 행동은 ‘정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라면서 “경제 파탄으로 인해 전체주의적 전시체제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북한의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고 했다.
특히 북한 지도부는 중국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 교수는 “중국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과 미국에 대한 군사적 공포가 해소된다면 북한은 자주국으로서 영역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은 대북한 정보가 빠른 만큼 급변사태 시 개입해야 할 시기와 방식에 관해 좀더 정확한 판단을 빨리 내릴 수 있다.
또 북한 사태가 중국에 불러일으킬 위기의식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은 한·미 양국보다 더 빨리 개입을 결정할 것이다. 이미 중국은 수년 전부터 북·중 접경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놓고 훈련을 거듭해왔다. 이는 김정은을 대남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저자는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는 북한 지도부의 요구는 한마디로 1990년대부터 추구해 온 ‘대북 적대시정책 무력화’와 ‘북·미 수교’”라고 단언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균형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자는 덧붙였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내는 첫 신호이며, 남한이 균형자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게 될 때 북한은 핵 개발보다 대화에서 인센티브를 찾을 수 있다.” 운전자보다는 균형자 역할이 적절한 용어라는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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