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이사장은 “정상회담에서 완전비핵화 논의의 출발은 핵 동결이 될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보고와 사찰 등 검증 조치가 따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최종 목표가 북한의 완전 비핵화라는 데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0일 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내놓은 새로운 전략 노선은 완전한 비핵화 선언이 아니라 기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의 추가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중단을 의미하는 불완전한 비핵화를 제시한 것이라는 게 하 이사장의 견해다.
하 이사장은 “남북·북미 두 정상회담의 첫 번째 의제인 비핵화의 논의 성과는 결국 미국과 북한이 같은 의미의 비핵화에 합의하느냐에 달려있다”며 “북한의 핵 능력이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나 2005년의 베이징 공동성명을 위한 협상 당시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현 상황에서는 동결, 보고, 사찰, 폐기 등에 대한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 북·중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의 노력에 선의로 응하고 평화와 안정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처를 하면 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은 2015년 10월 17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북핵 문제 해법으로 한미 양국이 요구하는 이른바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이나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 추진하는 쌍궤병진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며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강조한 바 있다. 하 이사장은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단계적·동시적 조치’는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을 시사한 것으로 중국의 쌍궤병진 제안과 유사한 것으로 봤다. 기존의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주장했던 입장보다 유연해진 접근이라는 얘기다.
관건은 북한이 북핵 협상 ‘과정’에서 유연성을 보인 만큼 비핵화 대가인 체제보장 내용에 대해서도 전략적 변화를 보이고 나올지다. 하 이사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였으며 이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남한 내의 핵 자산 유무, 나아가서는 한반도 주변의 전략 핵무기 유무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며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조선반도 비핵화라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북한의 동시 비핵화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2016년 7월 6일 공화국 정부성명에서 체제보장 5개 원칙으로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 핵 타격수단의 전개 중단, 대북 핵 위협 및 핵불사용 확약,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내세웠다. 하 이사장은 “최근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북미 간 실무접촉에서도 북한은 북미수교, 평화협정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라는 표현 대신 미국의 핵 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며 한미 연합훈련에서 핵 전략자산의 전개를 중지하고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5개 체제안전보장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그러나 내용상으로 핵 전략 자산 관련 조항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한 북한의 핵 능력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 등의 체제보장방안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 이사장은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매우 불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완전 비핵화의 대가로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하고 남북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질서와 달리 초국가적 사법 질서가 명실상부하게 작동하지 않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아무런 효력 없는 종잇조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봤다.

하 이사장은 북한에 대해서도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북한의 21세기적 진화”라며 “비핵 경제 병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 진화가 불가피한데 그런 변화는 외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21세기적 자구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당사국 또한 함께 공동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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