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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맞은 오페라 무대… 한국적 정서 꽃 피우다

입력 : 2018-04-22 20:51:18 수정 : 2018-04-22 21: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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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 맞아 다채로운 공연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맞은 올해 오페라계에서는 앞으로 70주을 위해 오페라의 한국화·현대화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국내 오페라계가 풍성한 잔치를 준비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26∼29일 푸치니 ‘투란도트’를 공연한다. 예술의전당은 27일부터 한 달간 제9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을 연다. 올봄 무대에서는 오페라를 한국화, 현대화하려는 시도들이 두드러진다.

그간 국내 무대는 18·19세기 서양 원작을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 주를 이뤘다. 제작진 상당수도 외국인이었다. 우리 제작 역량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오페라계가 앞으로 70년을 이어가려면 장기 청사진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출·무대기술 노하우를 축적하고 실기 위주 성악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오페라 ‘여우뎐’
오페라 ‘투란도트’’
◆단기 호흡으로는 한계… 대학 교육도 바꿔야

국내 첫 오페라는 1948년 1월 16일 명동 시공관에서 공연한 ‘춘희’(라 트라비아타)였다. 이후 70년간 한국 오페라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성악가의 활약이 화려했다. 조수미·홍혜경·신영옥·강병운으로 대표되는 1세대는 물론 연광철·이용훈·캐슬린 김·사무엘 윤·여지원·강요셉 등 숱한 성악가들이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 중이다. 유럽 오페라 관계자들이 농반진반으로 ‘한국 성악가가 없으면 유럽 극장들이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공연 수준도 올라갔다. 이용숙 오페라 평론가는 “요즘에는 유럽에 나가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프로덕션을 서울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적한 과제도 만만치 않다. 유럽 오페라 역사가 400년이 넘는 걸 감안하면 불가피한 일이다. 시급한 문제는 짧은 제작 호흡이다. 오페라계 관계자 A씨는 “현재의 제작·공급 방식으로는 지속 발전이 불가능하다”며 “한 번 제작된 공연이 단 4~5회 공연 후 소멸되니 작품성도, 제작력도 축적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일본의 경우 유럽의 뛰어난 무대기술 전문가들을 십년, 이십년 모셔다놓고 노하우를 전수받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왔고, 중국 역시 비슷한 실정”이라며 “우리는 외국 연출·성악가를 데려와 그때그때 올인해서 준비하니 당장은 아주 그럴듯한 공연을 보여주지만 노하우가 축적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오페라단이 긴 호흡을 갖기 힘든 1차 이유는 1, 2년 단위 짧은 운영 주기와 조직 불안정이다. 국립오페라단만 해도 최근 5년 사이 3명의 단장이 새로 부임했다. 신임 단장이 올 때마다 전임자의 유산은 사라지고, 캐스팅·제작 의뢰도 급하게 진행돼 난항을 겪는다.

보다 근본적 원인은 오페라 극장의 부재다. 유럽에서는 오페라 극장이 성악진·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예술팀 등을 갖추고 1년 내내 레퍼토리와 신작을 섞어 공연한다. 10, 20년을 내다보는 운영이 가능한 구조다. 한국도 유럽형 극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건립비는 차치하더라도 시장 자체가 작아 1년 내내 객석을 채울 관객 동원도, 수백억원의 운영비 충당도 쉽지 않다. 차선책으로 예술의전당과 국립오페라단·합창단 등의 통합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갈 길이 멀다. 작은 시장 규모는 민간 오페라단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작·창작 능력이 세계 수준에 못 미치는 것 역시 국내 오페라계의 과제다. 이용숙 평론가는 “일단 음악극에 적합한 대본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드물다”며 “오페라는 연극과 음악이 합쳐진 장르라 문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국내 음악대학에선 연출·연기·대본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창작 오페라의 경우 기존 틀에서 벗어나 음악극이란 이름으로 여러 형식 실험을 해야 한다”며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소재 발굴, 대본, 음악이 갖춰지면 새로운 관객층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페라 ‘흥부와 놀부’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당인리발전소·지하철역과 만난 오페라

오페라 대중화의 실마리는 결국 한국형 오페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이런 면에서 흥미로운 시도다. 세계적으로 ‘투란도트’는 대부분 고대 중국의 이국풍을 살려 연출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울 마포구 서울복합화력발전소(옛 당인리 발전소)를 모티브로 했다. 배경은 아예 기계문명이 멸망한 미래로 설정했다. 오페라 무대를 포스트 아포칼립스(문명 멸망 후의 세계) 장르로 꾸리겠다는 야심이다. 황량한 미래 도시에서 칼라프 왕자와 류, 투란도트 공주는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다.

6개 단체가 함께하는 오페라페스티벌 역시 오페라의 한국적 수용을 화두로 삼았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서울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푼다. 그리스 신화가 원작이지만 이번 공연에서 에우리디체는 뱀이 아닌 지하철 사고로 사망한다. 오르페오는 광화문역 거리의 악사로 바뀐다. 5월 4∼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누오바오페라단은 5월 11∼13일 같은 장소에서 창작 오페라 ‘여우뎐’을 공연한다. 한국 전래 설화 ‘구미호’를 소재로 했다. 소극장 오페라로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번안한 ‘썸타는 박사장 길들이기’(5월26∼28일)와 판소리와 오페라를 결합한 판오페라 ‘흥부와 놀부’(6월2∼4일)가 소개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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