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양잿물은 곧 수산화나트륨으로 독극물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것을 마신다고 한다. 공짜는 그 얼마나 힘이 센가.

공짜의 위력 혹은 폐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정책이 있다. 약 10년 전 사회적 논란까지 빚은 ‘의료보호’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빈곤층 의료비 100%를 지원하는 선의의 제도를 설계·시행했다. 그러나 100%가 말썽을 불렀다. 예산이 2002년 2조원대에서 2007년 4조1000억원대로 급상승했다. 이에 놀란 당국이 실태 조사를 벌였더니 경악할 결과가 나왔다.

1년에 365일을 초과해 진료 처방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몇 명이나? 39만명이다. 최고 기록은 1만2257일치 처방이다. 단 한 명의 정책 수혜자가 1년 동안 약 40년치 처방을 받은 것이다. 그야말로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였다. 정부가 생각도 못한 ‘의료쇼핑’ 사태였다. 당국은 고민 끝에 비록 소액이라도 자기 부담을 하도록 했다. 설계 변경의 효과는 극적이었다. 제도가 안정화한 것이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단돈 1000원이라도 나가게 되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법이다.

의료쇼핑 우려가 또 번지는 모양이다. ‘문재인 케어’가 본격화하면서 부작용도 불거진 것이다. 치과의 경우, 임플란트 시술 환자는 2014년 5824명에서 지난해 40만명으로 이미 급격히 늘었다. 문제는 본인부담률이 현행 50%에서 30%로 낮아지는 7월 이후다. 치과 문턱은 더욱 붐빌 것이다. 일반 병원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부터 건보 적용이 된 상복부 초음파 검사 예약 문의가 병원마다 폭주한다.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에 이어 국가 의료비 부담을 키울 쇼핑 목록이 늘어나는 것이다. 건보는 물론 공짜가 아니다. 하지만 그 비슷하게 인식되니 제동을 걸기가 쉽지 않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건보재정은 1조2000억원 정도 적자로 예상된다. 소폭 흑자를 내던 예전 상황과는 다르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는 러시아 속담도 있다. 하지만 의료쇼핑족이 유념할까. 건보 재정이 그 얼마나 건강하게 버텨낼지 지켜볼 일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