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해살이 들꽃의 스러짐에서 검은웨딩드레스의 춤을 본다

입력 : 2018-04-19 03:00:00 수정 : 2018-04-19 08:59:1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문이원 갤러리도스 개인전
검은 색은 죽음의 색이기도 하지만 세련됨의 상징으로도 소비된다. 검은 상복과 우아함의 극치인 검은웨딩드레스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문이원 작가는 들판의 한해살이 식물로 스러짐의 미학에 집중하는 작가다.

“2011년 겨울 어느 날, 이름 모를 곳을 거닐다 시들어 가는 한해살이 식물이 허공에 그려내는 실루엣에 매료되었다. 그 후 겨울이면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들고 이들을 찾아 다녔다. 빛을 등지고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 본 식물들은 고작 들판의 이름 모를 잡초일지언정 나름의 초록빛 르네상스를 지나 황폐하면서도 찬란한 사멸을 묘사하듯 그들의 마지막 제스처는 최고의 구성미를 자아냈다. 시간이 멈춘 듯 바람이 허공에 조각한 듯한 그들의 모습은, 바람이 나부낄 때는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나는 이 극적인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에게 시들어가는 한해살이 식물이 허공에 그리는 실루엣은 무엇보다 처절하게 아름다운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들판에서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모습이, 생의 마지막 움직임을 허공에 흩날리는 듯한 것이, 내게는 생기발랄하게 보이는 한편 가슴 저미게 애달프기도 하다. 그들의 춤은 땅으로 돌아가기 전 허공에 흩뿌리는 그들의 마지막 역사, 마지막 몸부림으로 다가오는데, 시들어 가는 식물의 뒤틀린 선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 현대무용에서 무용수들이 관절을 툭툭 쳐서 허공에 내던지듯 그려내는 몸짓과 오버랩된다.”

그는 시를 쓰고 스케치도 하고, 비디오작업도 했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탈출구가 돼준 것이 바로 자개 (mother of pearl: 진주의 어머니란 뜻을 내포)였다. 자개는 시시각각 변화하여 오묘한 하늘의 빛깔이 되어 식물들의 몸짓을 여백 아닌 여백으로 묘사하기에 더 없이 좋은 매개물이 되었다.

“자개 고유의 색은 어떤 컬러 코드로도 포착하기 힘든 홀로그램 빛을 띤다. 분홍빛인 듯 푸른빛이 감돌고 회색 빛 안에서 청록 빛이 반사되는, 단색으로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얼굴의 하늘 빛깔에 많이 닿아 있다.”

그의 화폭에서 한해살이 식물의 검은 실루엣은 검은 웨딩드레스 자락이 흔들리는 ‘생명의 서’ 같다. 죽음을 향해 말라가는 식물의 외형에서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춤을 추는 것 같은 생의 역동성을 실감하게 된다. 배경이 된 자개가 홀로 자신의 빛을 발하며 대상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우주의 빛, 생명의 빛이다. 25일∼5월1일 삼청동 갤러리도스에서 문이원의 ‘검은 춤, 허공이 그린 몸짓’전이 열린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