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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연두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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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7 00:07:42 수정 : 2018-04-17 00: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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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
연두의 저녁

박완호

연두의 말이 들리는 저녁이다 간밤 비 맞은 연두의 이마가 초록에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 연두가 또 한 연두를 낳는, 한 연두가 또 한 연두를 부르는 시간이다 너를 떠올리면 널 닮은 연두가 살랑대는, 널 부르면 네 목소리 닮은 연두가 술렁이는, 달아오른 햇살들을 피해 다니는 동안 너를 떠올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지점에 닿을 때까지 네 이름을 불렀다 지금은,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들려올 무렵이다


개나리, 벚꽃, 진달래 등, 봄꽃들이 진 자리에 연둣빛 이파리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던 은행나무에도 연둣빛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연둣빛 새싹들이 너와 내가 궁금한지, 아니면 세월이 궁금한지 담장 틈새에도, 보도블록 틈새에도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꽃이 지는 것이 아쉬워 마음 졸이던 나는 조그만 팔다리를 쏙쏙 내미는 새순을 바라봅니다.

한 연둣빛 새싹이 또 한 새싹을 낳는, 한 연두가 또 한 연두를 부르는 시간입니다.

달아오른 햇살들을 피해 다니는 동안 문득 되살아나는 너.

어린 시절의 너를 떠올리면 널 닮은 연두가 살랑대고, 널 부르면 네 목소리 닮은 연두가 술렁입니다.

나는 눈을 감고 너의 숨결에 귀 기울입니다.

푸른 잎사귀가 돋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톡톡,

감았던 눈을 뜨자 간밤 비 맞은 너의 이마가 초록에 들어서기 직전입니다.

끝났다 싶었던 네가

문득문득 되살아나는,

연두의 말이 들리는 저녁 무렵입니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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