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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빌 클린턴 정부 노동장관으로 잘 나가던 1996년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길에 어린 아들 방에 들렀다. 아들은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오늘밤 퇴근하고 돌아오면 깨워 주세요”라고 했다. “너무 늦을 것 같으니 내일 아침에 보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도 아들은 계속 졸랐다. 이유를 묻자 “아빠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라이시는 장관직을 그만뒀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라이시는 1992년 정권인수팀을 이끄는 등 클린턴 행정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했고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의회와의 일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라이시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신자유주의 경제에서의 ‘일과 삶’에 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저서 ‘부유한 노예’에서 “성공적 삶의 척도는 재산의 차원을 넘어선다”며 일과 삶의 균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공화당 의회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엊그제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이자 차기 대권 후보로 전도유망한 마흔여덟의 젊은 정치인이 워싱턴 정가에 작별을 고한 것이다. 공화당은 충격에 빠졌다. 라이언이 내세운 이유도 가족이다. 10대인 세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주말 아빠’(weekend dad)가 되기 싫다는 것이다. 라이언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자녀에게 주말 아빠가 아닌 ‘풀타임’ 아빠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주중에는 워싱턴에 머물고 주말에 고향인 위스콘신주 소도시 제인스빌 자택을 오가는 생활을 해왔다.

다른 사정이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강경 보수파와 좌충우돌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거나 불투명한 중간선거 전망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잠시 피해 있다가 2024년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 또한 제기된다. 진짜 배경이 뭐든 라이언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이 우리 사회의 주말 아빠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 건 사실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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