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정길연의사람In] 가볍고 간결한 삶을 위하여

관련이슈 정길연의 사람in

입력 : 2018-04-13 20:11:37 수정 : 2018-04-13 20:11:3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가볍고 간결한 라이프스타일을 원한다. 공간과 사물의 최소화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하루에 한두 가지 이상 쓰지 않는 물품을 골라 버리기로 한다. 몇 년 새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옷가지나 쓸모가 없어진 생활용품, 잃어버린 물건과 달리 내다 버린 물건이 아쉬워지는 경우란 백에 한둘쯤 될까 말까다.

버리고 또 버리는데도 집안 구석구석 터줏대감처럼 눌러앉은 사물로 넘쳐난다. 소유의 욕망과 충동구매의 부산물이다. 이 낱낱의 물건을 끌어모으는 데 들인 시간과 돈과 공력을 생각하면 때늦은 후회가 일기도 한다.

과연 이 가운데 나의 일상에 꼭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매일같이 하나둘 들어내고 비우다 보면 언젠가는 꼭 있어야 할 알맹이만 남게 되지 않을까. 내 경우 공간과 사물의 최적화를 저지하는 복병은 두세 가지쯤 된다. 소유물을 향한 단순한 미련, 정밀하지 못한 소비습관, 그리고 책의 형태를 갖춘 사물에 대한 애착 또는 허장성세다.

서가 한쪽에 시커멓게 도열한 두 질의 영인본, ‘문장’과 ‘창작과 비평’은 펼쳐 읽은 기억이 아마득하다. 그 시대 문학을 열독하고 싶은 욕구가 새삼 솟구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손댈 확률은 0%에 가깝다. 1980년대에 간행된 수십 권짜리 ‘세계현대문학전집’도 이사 들어올 때 자리 잡은 뒤로 십 년째 묵묵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다. 서른두 권짜리 ‘세계대백과사전’은 열두 달에 걸쳐 책값을 나눠 갚으면서도 얼마나 뿌듯했던가. 하지만 온라인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그 편리성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지 않은가.

음반들도 그저 쌓아두기만 하는 장식품이 되고 말았다. 불과 스무여 해 전까지만 해도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려 음악을 듣고는 했다. 그러다 턴테이블 부속품을 교체해야 할 때 CD플레이어로 갈아타면서 콤팩트디스크를 사 모았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지고 CD플레이어마저 고장나 버린 지금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듣는다.

너무나 빠르게 문화의 환경이 바뀐다. 나는 늘 몇 박자 뒤처지고, 그 사이 소장품은 진열장 안의 음식모형이나 다름없게 됐다. 내 집에서는 무용지물이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특별한 추억의 순간이 내장돼 있다. 가볍고 간결한 삶의 본질은 ‘작은 행복’일 것이다. 버리고 비우되 무엇을 남겨야 행복할까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

정길연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