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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 물들이던 슬픔과 환희의 기억

입력 : 2018-04-13 03:00:00 수정 : 2018-04-12 21: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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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라연 시인 신간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아이/ 맡길 곳이 절박해지자// 정(情)으로/ 똘똘 뭉쳐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물의 대화 사이로 입술을 쭈욱 내밀더군요// 물결엔/ 반드시 모성이 있다고 믿게 되었던 거죠// 주저함 없이/ 겨우 중학생이던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더군요// 뼛가루가/ 뿌리 내린 듯싶은 거기를 해마다 찾아가네요// 한 해에 한 끼라도/ 챙기고픈 엄마의 손을 알아본/ 물결은//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입을 벌려주네요/ 또 그 마음을 알아차린 엄마는/ 흰 국화 꽃잎을 정성껏 따서/ 한참을 던지더군요”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목전이다. 어떤 위로로도 달랠 수 없는 참혹이지만, 박라연(67) 시인이 최근 내놓은 여덟 번째 시집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창비)에 수록된 ‘집밥 한 끼’는 유달리 느껍다. 시인은 세월호를 뛰어넘어 모든 어린 생명을 위무하고자 일부러 대상을 바꾸었다고 했다. 부모는 어린 자식을 잃었고 그 아이의 뼛가루를 강물에 뿌렸는데 해마다 기일이 되면 흰 국화 꽃잎을 그 물결에 던진다는 일견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물결이 굽이치며 입을 벌리는 듯한 형상에서 아이의 목젖을 떠올리고 집밥을 챙기는 시심이 깊다.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로 1990년 문단에 나온 박 시인은 슬픔을 따스하게 껴안는 동화 같은 삶의 진경을 펼쳐왔다. 이번 시집에는 7년 전 전북 군산 인근 시골 폐가로 들어가 살기 시작한 이래 길어낸 성찰들을 담아냈다.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허락도 없이 누군가 그 시간을 데려가고 있다. 그래도 새와 나비들이 날고 있는 현재는 여전히 너무나 아름답다. 그녀는 눈부시게 누렸던 과거가 지금은 ‘빚’으로 남아서 ‘빛’을 거두어간다고 탄식한다. 포기하는 법을 알 때 눈부시진 않아도 환한 빛 속에 눈을 감고 앉아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내면의 끈이 짧아서 목돈처럼 들어온/ 그날의 빛들을/ 은행에 넣어두는 법을 몰랐다면// 연두도 분홍도 새어나올 수 없는 처지에/ 빛을 대출받으려고 두리번거린다면/ 제발 여기서 포기해// 어쩌자고 함부로/ 눈부시고 싶은가 말이야”(‘너만의 산책’)

‘노랑나비로 번지는 오후’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이번 시집에 대해 박라연은 “상처에 붙여진 이름을 목 놓아 부르다보면 금빛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는 순간 바다가 나타나는 환희를 꿈꾼다”면서 “기억이든 사물이든 생물이든 그 손을 놓아야 했을 때의 상처와 환희를 말하려 했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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