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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城처럼 서글픈 우리 인생

입력 : 2018-04-08 21:12:07 수정 : 2018-04-08 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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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으로 본 카프카의 ‘성’
토지측량사 K가 눈밭에 쓰러진다. 의문이 든다. 그는 왜 성에 가려 했을까. 그는 왜 성에 가지 못했을까. 성에 가야 한다는 당위에 평생 미혹당한 건 아닐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이 연극 무대로 옮겨졌다. 국립극단이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같은 제목으로 오는 15일까지 공연한다. 카프카의 ‘성’은 마을에 도착한 측량사 K가 번번이 성에 들어가는 데 실패하는 내용이다. 구태환이 연출한 연극(사진)은 원작의 풍부한 주제의식을 끌어안았다. 극은 관료주의와 인간 소외,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으며 흐르다 마지막에 이르면 인생 자체를 서글프게 관조한다. 성에 가려는 K의 집요한 몸부림은 평생 발버둥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일생을 떠올리게 만든다. 성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데아일지, 혹은 그에 미혹당하기보다 마을에 충실히 녹아드는 게 나을지 정답은 없다. 연극은 성 주변을 맴도는 K를 통해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말한다.

측량사 K가 고용된 마을에 도착한다. 극 속 대사에 따르면 ‘사실 성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큰 사건’이다. K는 행정 착오로 일감을 얻지 못한다. 도착 보고도 해야 하고, 착오도 정정해야 하지만 성의 국장과는 전화통화조차 힘들다. 마을 사람들은 비협조적이고 약혼녀 프리다는 떠나자고 한다.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성 사람과 만나려 애쓴다.

K의 노력은 영웅적 의지보다 장삼이사의 끝없는 작심삼일과 닮았다. 그는 두어 번 성의 국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잠이나 욕정 때문에 실패한다. 또 성으로 걸어가려 하지만 길이 끊어지자 포기한다. 이 후 하찮은 연락관조차 성을 오가고 있음을 알게 되나, 자기가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성에 다가서기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의 장점은 연극으로서 흥미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카프카 소설은 ‘극적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황량하고 어두운 데다 주인공의 의지가 번번이 좌절돼 답답하다. 타인들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앞을 가로막고,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부조리하다. 상식적 기대가 어긋나는 꽉 막힌 세계지만, 연극이 지루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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