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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상자를 연 걸까?” 유전자가위 개발자의 고백

입력 : 2018-03-31 03:00:00 수정 : 2018-03-30 2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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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다우드나·새뮤얼 스턴버그 지음/김보은 옮김/프시케의숲
크리스퍼가 온다/제니퍼 다우드나·새뮤얼 스턴버그 지음/김보은 옮김/프시케의숲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의 현실화가 성큼 다가왔다. 이는 특정 유전자를 정밀 편집할 수 있는 생명공학 기법이다. 이 책 저자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인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53)는 크리스퍼를 처음 개발하면서 이 분야를 선도하는 생물화학자다. 그는 크리스퍼 기술의 상용화를 열어젖혔다. 크리스퍼 실험실을 230만원 정도면 차릴 수 있고, 15만원이면 유전자 편집 키트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뇌질환 등 불치병 치료와 함께 건강 등 생활 분야의 산업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2012년 6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기술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를 올렸다. 이 논문에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캐스9’이 실려 있었다. 2015년 양대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가장 뛰어난 과학적 성과’로서 크리스퍼 기술을 꼽았고, 그해 ‘타임’지는 다우드나를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현재 그는 생물학 분야의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의 발표 이전까지 크리스퍼 기술은 덜 정밀했고, 상용화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그가 유전자 조작이나 편집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이고, 오류도 거의 없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의 연구 성과에 따라 유전자를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면, 인간생활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될 수 있다.

크리스퍼 기술이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는 진짜 이유는 저렴한 비용과 쉬운 사용법 때문이다. 실험할 때 필요한 것은 간단한 도구와 인공 염색체, 즉 플라스미드뿐이다.

앞으로 이 기술은 HIV와 암 등의 질병 치료와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각종 질환 예방과 치료, 신약개발은 물론 효모의 게놈(유전체)을 편집해 새로운 풍미의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등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썩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숙성하는 토마토,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 경찰과 군인을 도울 수 있는 근육질의 개, 뿔이 자라지 않는 소 등은 이미 유전자편집을 통해 존재하는 생물들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생물학 교수인 저자 제니퍼 다우드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인류가 쓰기에 따라 불치병을 치료하는 건강 혁명의 기원이 될 수 있겠지만, 반면 원자폭탄 같은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어디까지 유전자가위 연구를 허용할 것인가에 있다. 크리스퍼 기술을 인간에 적용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윤리적인 문제는 둘째로 치고, 특정 기능만을 장착한 사이보그 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연구 성과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만약 어느 미친 과학자가 인간 배아에 기술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 역시 연구 과정에서 무분별한 사용의 위험성을 우려했다고 고백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말은 내게 양심의 가책을 더할 뿐이었다. 인간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이 핵무기 투하와 맞먹는 재앙을 부르지는 않겠지만, 크리스퍼 연구를 서두르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기술을 개발할 당시 유전 질환을 치료해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고 토로한다.

이런 우려 속에 저자는 2015년에 ‘국제 인간유전자편집회의’를 열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철학자, 정치인, 법률가, 역사가 등이 두루 참여하여 폭넓은 토론을 전개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쓴 김진수 서울대 교수도 이 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에 황우석 사태를 맞으면서 연구가 위축되었다.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가 무너지면서 강력한 규제로 귀결되었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의 연구는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다. 현재 크리스퍼 기술은 상용화에 매우 근접해 있고, 엄청난 산업 규모가 예상된다. 각국 간에 치열한 특허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크리스퍼 기술 세계 톱3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크리스퍼 기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크리스퍼 또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극히 일부의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학술 용어로서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생물학자들에게도 생소했다”면서 “하지만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큼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유전자가위의 작동 원리를 처음 규명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가 그 경험담을 이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저자 다우드나 교수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기술은 없다. 다만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자신의 유전적 미래를 통제할 힘은 경이로운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대면한 적 없는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크리스퍼 기술의 최신 동향을 전하면서, 사회적 윤리적인 파급력을 공론화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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