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다우드나·새뮤얼 스턴버그 지음/김보은 옮김/프시케의숲 |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의 현실화가 성큼 다가왔다. 이는 특정 유전자를 정밀 편집할 수 있는 생명공학 기법이다. 이 책 저자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인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53)는 크리스퍼를 처음 개발하면서 이 분야를 선도하는 생물화학자다. 그는 크리스퍼 기술의 상용화를 열어젖혔다. 크리스퍼 실험실을 230만원 정도면 차릴 수 있고, 15만원이면 유전자 편집 키트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뇌질환 등 불치병 치료와 함께 건강 등 생활 분야의 산업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2012년 6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기술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를 올렸다. 이 논문에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캐스9’이 실려 있었다. 2015년 양대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가장 뛰어난 과학적 성과’로서 크리스퍼 기술을 꼽았고, 그해 ‘타임’지는 다우드나를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현재 그는 생물학 분야의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의 발표 이전까지 크리스퍼 기술은 덜 정밀했고, 상용화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그가 유전자 조작이나 편집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이고, 오류도 거의 없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의 연구 성과에 따라 유전자를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면, 인간생활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될 수 있다.
크리스퍼 기술이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는 진짜 이유는 저렴한 비용과 쉬운 사용법 때문이다. 실험할 때 필요한 것은 간단한 도구와 인공 염색체, 즉 플라스미드뿐이다.
앞으로 이 기술은 HIV와 암 등의 질병 치료와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각종 질환 예방과 치료, 신약개발은 물론 효모의 게놈(유전체)을 편집해 새로운 풍미의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등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썩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숙성하는 토마토,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 경찰과 군인을 도울 수 있는 근육질의 개, 뿔이 자라지 않는 소 등은 이미 유전자편집을 통해 존재하는 생물들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생물학 교수인 저자 제니퍼 다우드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인류가 쓰기에 따라 불치병을 치료하는 건강 혁명의 기원이 될 수 있겠지만, 반면 원자폭탄 같은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저자 역시 연구 성과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만약 어느 미친 과학자가 인간 배아에 기술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 역시 연구 과정에서 무분별한 사용의 위험성을 우려했다고 고백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말은 내게 양심의 가책을 더할 뿐이었다. 인간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이 핵무기 투하와 맞먹는 재앙을 부르지는 않겠지만, 크리스퍼 연구를 서두르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기술을 개발할 당시 유전 질환을 치료해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고 토로한다.
이런 우려 속에 저자는 2015년에 ‘국제 인간유전자편집회의’를 열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철학자, 정치인, 법률가, 역사가 등이 두루 참여하여 폭넓은 토론을 전개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쓴 김진수 서울대 교수도 이 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에 황우석 사태를 맞으면서 연구가 위축되었다.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가 무너지면서 강력한 규제로 귀결되었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의 연구는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다. 현재 크리스퍼 기술은 상용화에 매우 근접해 있고, 엄청난 산업 규모가 예상된다. 각국 간에 치열한 특허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크리스퍼 기술 세계 톱3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크리스퍼 기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크리스퍼 또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극히 일부의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학술 용어로서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생물학자들에게도 생소했다”면서 “하지만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큼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유전자가위의 작동 원리를 처음 규명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가 그 경험담을 이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저자 다우드나 교수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기술은 없다. 다만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자신의 유전적 미래를 통제할 힘은 경이로운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대면한 적 없는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크리스퍼 기술의 최신 동향을 전하면서, 사회적 윤리적인 파급력을 공론화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