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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과학 강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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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22 07:36:14 수정 : 2018-03-22 07: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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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동안 우주비행한 이소연 / 압박·부담감 속 18개 실험 수행 / 귀환한 후 ‘전시용 사업’에 허탈 / “과학기술도 즐겁고 행복해야” 최근 ‘이소연의 우주일기’라는 매우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 글은 모 과학잡지가 한국 최초로 우주에 갔던 이소연 박사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이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8년 4월 8일 소유즈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올라가 10일 동안의 비행을 마친 후 지구로 돌아왔다. 당시의 언론은 이 박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그녀는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박사가 우주인인가 우주관광객인가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박사가 과연 우주에서 의미 있는 임무를 수행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었다. ‘이소연의 우주일기’에 따르면, 이 박사는 우주에서 무려 18가지의 실험을 수행했고, 그것도 엄청난 시간적 압박 속에서 이루어냈다. 자신이 잘못해서 실험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심리적 부담도 컸다. 당시에 러시아 담당자는 “18개 실험 중에서 절반만 수행해도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실험의 내역을 조금 줄여줄 것을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우주인과 우주관광객을 구분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관광객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하지만, 이 박사의 우주비행에서는 그러한 여건이 전혀 형성돼 있지 않았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몸의 균형을 맞추기도 어렵고 색다른 멀미도 경험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일반적인 멀미가 어지러움이나 울렁증을 준다면 우주에서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게다가 여성의 경우 여성만이 겪는 신체적 특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문제가 매개될 수밖에 없다.

‘이소연의 우주일기’에는 웃지 못할 촌극도 소개돼 있다. 이 박사가 우주에서 했던 임무(?) 중의 하나는 비행복의 패치를 바느질하거나 실험장치에 부착된 스티커를 교체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한국 정부의 담당부처 이름이 과학기술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는 바람에 발생했다. 이와 같은 한국적(?) 상황에 대해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인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고 한다. 과학기술부를 그대로 두고 방송을 하면서 자막에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었음’이라고 써 주었으면 안 됐을까.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한 이 박사의 평가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면 성공적인 사업이었겠지만, 한국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면 성공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자신이 귀환한 후 우주인 사업이 3년짜리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무척 허탈했다고 전한다. 한때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우주인 배출 사업은 글자 그대로 1회성 전시용 사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인터뷰 말미에서 이 박사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우주강국의 모습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국가의 성격이나 상황에 맞는 우주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 다른 선진국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의 우주개발은 불행의 씨앗에 불과하며 로켓 몇 대, 위성 몇 대와 같은 잣대로는 우주강국이 요원하다”고 했다. 과학기술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과학기술자들이 행복해야 과학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필자는 품격을 느꼈다. 인터뷰를 한 분은 진지하면서도 세련된 질문을 던졌고, 특히 이 박사는 자신이 우주인 배출 사업의 상품 혹은 도구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지원해 준 관계자들에게도 과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이 든다. 이와 같이 세 주체가 서로 어우러질 때 과학기술의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자들이 즐겁게 탐구하고, 정부가 건강한 마당을 깔아주며, 국민의 관심과 이해도 높은 그런 세상을 꿈꾼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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