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 뉴스채널에서는 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피해현장에서 백화점의 물건을 수거해 가는 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슬픔의 현장에서도 본인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들끓었던 적이 있었다. 자연재해나 인재 등의 사회적인 비극이 있을 때마다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수많은 전문가가 나타난다. 그들 중 대다수는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본 분에 대한 공감과 선의를 기본으로 그저 돕고자 나선 국민들이다. 이런 분들은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이익이나 손해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 슬픔을 핑계로 나서서 전문가 행세를 하지만, 본인의 이익을 챙기려는 분도 있는 것 같고, 가짜 전문가로 득세해 본인이 말하는 것만 맞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전문가라는 것이 그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있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해당 영역에 충분한 경험과 실적이 있고, 무엇보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의 인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살과 우울증은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신건강의 문제나 복지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 등 근대의 굴곡을 버티고, 압축된 산업화를 겪으면서 피곤하고 탈진한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일부가 더 이상 어찌할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살예방대책의 목적이 그저 자살사망자의 숫자를 줄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살예방대책은 이 사회를 보다 믿을 만하고 살 만한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거대한 사회문화적인 흐름을 전제하여 진행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창수 중앙자살예방센터장·고려대 교수 |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지나치게 행복과 성공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획일화된 성공과 행복의 기준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앞서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내 가족, 내 동료에게 해야 할 말일지도 모르겠다.
한창수 중앙자살예방센터장·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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