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대학의 역할, 교육외 연구·기술사업화로 확대해야

관련이슈 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입력 : 2018-03-17 14:54:57 수정 : 2018-04-25 11:25:1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34> 대학의 미래/세계인에 도움되는 연구/봉사하는 인재 육성 등/글로벌 가치 창출을/인류와 국가의 난제를/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과거 상아탑 개념서 탈피/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하고/일자리와 부를 창출해야
나는 지난 겨울방학 동안 색다른 도전을 경험했다. 영어학원을 다닌 것이다. 방학 두 달 동안 사설학원에서 주말 이틀씩 하루 8시간씩 영어를 배웠다. 그동안 나는 언제부터인지 외국인을 만나면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생각을 느끼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학교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영어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잘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 등록을 했다. 결국 나의 도전은 성공이었다. 오랜만에 영어를 다시 배우며 정리하니 매우 기분이 좋았다.

◆스크린만 보며 공부하는 시대

그런데 내가 더욱 놀란 것은 모든 강의가 동영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학원의 강사가 직접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녹화해 놓은 강의를 보면서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나도 동영상으로 강의를 하고, 교실에서는 질문과 토론만 하는 Education 4.0 방식(Flipped learning)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학생이 돼 수업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학원에서는 강사의 개입이 거의 없고, 오로지 스크린 영상으로만 진행됐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학원비를 내면서 하루에 8시간씩 앉아 수업을 들었다. 학교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내가 소속돼 있는 카이스트는 지난 1년 동안 ‘비전 2031 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했다. 143명이나 되는 교수, 학생, 외부전문가들이 모여서 교육환경의 변화와 대학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최근 카이스트가 바라보는 미래 세계와 발전전략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다. 카이스트의 미래와 발전전략은 특정 대학을 넘어서 다른 대학과 국가적인 관심사일 수 있기 때문에 간단히 소개해 본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카이스트는 1971년에 출범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북한보다 적은 100달러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카이스트 설립의 기본정신은 한국 산업발전을 위한 인력 양성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설립 47년이 지난 오늘을 돌이켜보면 상당 부분 설립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카이스트는 국가가 집중 육성하는 대학이다. 그런데 국제적인 평가를 보면 50위 정도에서 맴돌고 있다.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과학의 물줄기를 돌릴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을 실험실이라는 동굴에 가둬 기른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다. 실속이 적은 연구논문 숫자에 매몰되었거나 한국 안 개구리에 머물지 않았는지 반성을 한다.

더욱이 교육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우선 사이버교육 시스템의 발달로 대학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시대가 되었다. 온라인 공개강좌(MOOC) 등의 공개 교육시스템은 대학의 울타리를 파괴하고 있다. 언어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국경을 넘어서는 교육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가 지난겨울 영어학원에서 경험했듯이, 굳이 교수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서도 교육은 거의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다. 몇몇 스타 교수만 있으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목적은 교육연구 기술사업화

급변하는 교육환경 변화 속에서 카이스트는 어떻게 변화에 대응해 국가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갈 것인가. 국가가 집중 육성하는 대학답게 2031년까지는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내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역할을 교육뿐만 아니라 연구와 기술사업화로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당연히 연구와 창업활동은 인터넷에서 몇몇 스타 교수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로벌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 세계인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세계인을 위해 봉사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미래전략을 교육, 연구, 기술사업화, 국제화, 미래전략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자.

먼저 교육 분야에서는 미래에 맞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당연히 창의와 도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 배려를 추가한다. 나 자신만을 위한 과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을 연구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인재를 기른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기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적용되고 있는 Education 4.0 방식과 MOOC 방식을 더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협동심과 학생주도성을 기를 수 있는 팀 프로젝트 방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인류와 국가가 원하는 연구를 해야

다음으로, 연구 분야에서는 인류와 국가의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들이 연구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인류가 필요로 하는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연구를 한다. 그다지 의미가 적은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개수에서 해방돼 진정으로 의미 있는 연구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동안 교수와 연구결과를 평가할 때 논문의 개수를 중심으로 평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어렵고 위험한 연구보다 남들이 많이 하는 안전한 연구를 많이 하게 됐다. 도전 연구를 하는 교수는 위험해진다. 도전을 피하다 보니, 세계와 국가를 파괴적으로 바꾸는 연구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 점이 향후 카이스트의 운명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어 기술사업화는 교육과 연구에 이어서 대학의 중요한 임무가 되고 있다. 상아탑이라는 과거의 개념에서 벗어나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해 일자리와 부를 창출하는 일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한다. 카이스트가 많은 벤처기업을 배출하기는 했으나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기술투자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오늘도 대부분의 졸업생이 안전한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왜 똑똑한 사람이 일생 동안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나고 보니 한국 안의 개구리였다.

또한 국제화는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대학이 크게 뒤처진 분야이다. 현재 카이스트 내의 외국인 교수는 8%, 외국인 학생은 6% 수준이다. 외국 경쟁대학의 외국인 비율은 25% 이상이다. 외국인들이 생활하기 편리한 이중언어 캠퍼스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외국인 교수 유치할 때에 현지에서 받는 처우 그대로 해주는 풍토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 기준의 제도와 처우를 강요하는 면이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홍콩과기대와 싱가포르난양공대는 모두 이러한 점을 개선해 우수 외국인 교수를 유치하고 있다.

끝으로 미래전략 분야이다. 대학의 미래전략은 어떠한 인재를 기르고, 어떠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큰 생각 없이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야를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상은 변하고 새로운 주제는 떠오른다. 새로운 주제를 먼저 선점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미래의 주인공이 된다. 남들이 정의해 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How 대학에서,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What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머뭇거리면 주춧돌만 남아 있을 대학들

여기서 소개한 카이스트의 반성과 발전전략은 다른 대학에도 비슷한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환경 변화 속에서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방학 동안에 교육환경의 변화가 현실이 돼 있음을 확인했다. 수많은 학생이 하루 8시간씩 스크린이 시키는 바에 따라 읽기 말하기 연습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모든 학교는 새로운 교육 비전과 전략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수십 년 후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