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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 합의 파기 ‘전과 6범’ / 비핵화 의지 표명 반갑지만 / 거짓 술수 가능성 철저 경계해야 / 평화 지키려면 용기와 지혜 필요 두 아이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한 아이가 사탕을 먹으려 하자 같이 놀던 친구가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탕을 손에 쥔 아이가 물었다. “먹고 싶어?” 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 친구는 시키는 대로 했다. 아이는 깔깔 웃고는 사탕을 주지 않았다. 아이의 요구는 더 대담해졌다. “내가 그네를 탈 테니 뒤에서 밀어.” 그네까지 밀었지만 사탕의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 “나를 업고 저쪽으로 가.” 사탕에 목을 맨 친구는 아이를 등에 업었다. 과연 이번에는 사탕을 줄까? 하인처럼 구는 이에게 하나뿐인 사탕을 줄 필요성을 느낄까?

실제 이런 행동은 남북관계에서도 일어난다. ‘평화’라는 사탕을 쥐고 흔드는 쪽은 언제나 북한이다. 더구나 북은 사이좋게 놀던 친구가 아니라 우리와 총칼을 마주하는 적이다. 그 북한이 이번에는 평화의 사탕을 줄까.

역사의 시계추를 13년 전으로 돌려보자.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 대북 특사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2005년 6월17일 평양으로 달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정동영에게 귀엣말까지 하며 친밀감을 표시하던 김정일이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므로 여전히 유효하오.” 두 번째 펀치가 정동영에게 날아들었다. “미국이 체제안전을 보장한다면 핵무기를 한 개도 가질 이유가 없소.” 대북 특사와 남쪽 언론은 김정일의 ‘통 큰’ 조치에 호들갑을 떨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지난번 평양을 찾은 대북 특사단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므로 아직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언약과 함께. 예전 정동영에게 했던 약속과 영락없는 판박이다. “(김정은이) 솔직하고 대담했다”는 특사단의 발언과 언론 반응까지도. 다른 게 있다면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으로, 특사단 수장이 정동영에서 정의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달 후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번째는 정동영이 특사로 방북한 지 2년 뒤 평양에서 열렸다. 당시 남쪽은 김정일의 펀치 두 방에 정신줄을 놓았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핵 개발 계획을 완전 포기한다고 합의하고도 이듬해 1차 핵실험을 했다. 그로부터 내리 6차 실험까지 마치더니 핵 완성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거짓 평화의 생생한 궤적이다.

핵 합의 파기에서 북한은 이미 전과 6범의 중범이다. 합의를 미끼로 남한과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의 단물만 받아먹었다. 그런 북한을 어찌 믿겠는가. 사탕의 유혹에 빠진 어린아이의 행동을 나무라는 우리가 또다시 북한에 속아 넘어간다면 세계의 웃음거리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탕은 잠시의 기쁨을 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북핵은 국가 존망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을 하자는 거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일이 아니다.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으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천금 같은 대화의 기회를 슬기롭게 운용하면서 전쟁에 대비하는 일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의 경구처럼 대화의 시기에도 안보엔 빛 샐 틈이 없어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평화만 외치다 전쟁의 참화를 겪는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배연국 논설실장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이번엔 진짜일 순 있다. 과거 6번의 거짓이 들통났다고 7번째도 거짓이라는 법은 없으니. 김정은을 ‘병든 강아지’라고 조롱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리라 믿는다”고 기대감을 표한 마당이 아닌가. 하나 김정은의 말이 훗날 진실로 판명될지라도 국가 안보를 놓고는 도박할 수 없다. 적이 99번 약속을 지킨 경우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안보에 임하는 자세이니까.

평화를 지키는 일은 전쟁만큼이나 어렵다. 적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담대한 용기와 거짓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의 눈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그 두 가지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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