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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라운드 인터뷰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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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3 23:21:29 수정 : 2018-03-13 2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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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뻔한 질문 받고 뻔한 대답 / 기자들 벽돌 찍어내 듯 기사 양산 / 팬들은 날것 그대로의 기사 원해 / 다시 발톱 세우고 정체성 찾아야 ‘… 라운드 인터뷰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 획일성이다. 마치 벽돌 찍어내듯 똑같은 기사가 양산된다. 분석력이 돋보이는 질문을 할 수 없고 홍보성 질의·응답만 오가는 상황이 연출된다. “서로 간의 호흡은 어땠는가”라는 빤한 질문을 건넸을 때 “사실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참아가며 촬영했다”고 답하는 배우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돌아올 답은 뻔하다. “척척 잘 맞았다”, “눈빛만 봐도 서로 알 수 있었다” 등이다. 누군가 핵심을 건드린 ‘빛나는 질문’을 던졌다 해도,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날 때쯤이면 이미 인터넷에 공유된 자신의 ‘빛바랜 질문’을 접하게 된다. … 배우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뷰 기간 내내 비슷한 질문을 받고 비슷한 대답을 되풀이한다. 사실 배우들은 이 같은 인터뷰가 달갑지 않다. 의식도 개념도 없는 배우로 비치기 때문이다. 배우와 매체들이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하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14년 8월 본보에 쓴 칼럼 중 일부다. 3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선된 것은 하나 없고 오히려 확대·고착화되었을 뿐이다. 영화계의 라운드 인터뷰가 방송·드라마계로 퍼지더니 이제는 K팝 등 대중음악계까지 확산했다.

새 영화나 드라마, 음원 또는 앨범이 나오면 주연 배우나 가수들은 대개 3일 동안 인터뷰에 응한다. 적게는 4개, 많게는 12개 매체를 한 팀으로 묶어 1시간을 할애한다. 45분 동안 질문에 답하고 5분간 사진촬영하며, 화장을 고치거나 의상을 바꿔 입는 데 10분을 쓴다. 오전에 두 차례와 오후 다섯 차례, 하루 일곱 번에 걸쳐 28∼84개 매체와 만난다. 강행군이지만 3일간 250여개 매체와 인터뷰할 수 있으니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제작사나 대형기획사 입장에서 효과적일 뿐이다. 홍보대행사는 인터넷 매체 수의 급증과 매체들 간 형평성을 이유로 꼽지만, 라운드 인터뷰는 ‘기자’를 ‘홍보 전사’로 탈바꿈시키고 기획사나 제작사의 나팔수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울림 있는 기사를 제치고 가십성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쉽게 노출되는 탓도 크다. 알맹이 없이 호기심만 자극하는 기사가 대세를 이룬다. 신인 배우나 가수들은 인터뷰가 원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여길 정도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일부 슈퍼스타급 가수들은 아예 인터뷰를 거부하고 대형 기자회견만 하겠다고 나섰다. 쌍방향 시대에 일방향 시대로의 회귀를 선언한 셈이다. 이는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갑질’이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환영으로만 존재할 뿐 이제 진정한 팬들은 사라지고 소비자와 ‘호구’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획일성은 문화의 독이다. 투자 대비 효과와 수익성만 따지면 인기 있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겠지만 예술성을 지닌 ‘작품’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이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K팝을 오히려 절름발이로 만들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독자와 시청자, 팬들은 인간 냄새 나는, 날것 그대로의 진솔한 인터뷰 기사를 원한다. 적어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대상을 인터뷰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의 개봉 때나 드라마의 종방 무렵, 음원 발표 때에 맞춰 집단으로 행해지는 홍보용 인터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같은 라운드 인터뷰에 순응하는 기자들도 문제다. ‘보도자료 복사’와 ‘받아쓰기’에 익숙한 탓이다. 호랑이가 스스로 ‘사냥’을 포기하고 어슬렁 민가에 내려가 던져주는 고기나 받아먹는다면 이미 길량이가 된 것이다. 길량이 또한 지나가는 쥐를 보고서도 “잡을까?… 좀 기다리자. 누가 참치 캔 하나 따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곧 집안의 애완용 고양이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사육되어 길러지길 바라는 기자라니….

잊고 있던 자신의 본디 ‘호랑이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다시 송곳니를 갈고 발톱을 세울 때다. 취재 본능을 일깨울 때다. 대형기획사나 제작사의 ‘갑질’에 맞서 기자 본연의 직무와 ‘책임’을 자각하며, 잠시 잊고 지내던 ‘정체성’을 다시 꺼내들어야 한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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