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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 다가오는 '목말사회'] 취업·주택·보육 ‘3대 걸림돌’… 결혼할 여건부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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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2 06:00:00 수정 : 2018-03-11 22: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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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저출산 해법’ 전문가에 묻다
머잖아 우리나라는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목말사회’가 됩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생산가능인구는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서 주인공은 ‘출생아 수’, ‘합계출산율 몇명’ 같은 양적 목표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의 삶과 그들의 무게는 ‘아이는 행복’이라는 일방적인 구호에 가려져 있거나 조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계일보는 창간 29주년을 맞아 저출산·고령화의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보는 ‘다가오는 목말사회’를 연재합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은 세 살 많은 공대 출신 ‘정대현’을 만나 결혼해 딸을 낳는다. 동시에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도 그만둔다. 육아에 지쳐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공원에서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다 ‘맘충’ 소리까지 듣는다.

79년생 남편 정대현의 삶이라고 더 나을까. 주중 내내 자정 가까이 퇴근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도 하루는 일을 해야 한다. 아내의 어깨를 짓누르는 육아의 짐 못지않은 부양자의 무게에 편하게 허리를 펴기 힘들다.

‘다가오는 목말사회’를 준비하며 만난 여러 엄마 아빠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호소한다. 출산을 강요하기 전에 행복을 이야기하자고. 부모와 자녀들 모두 지금 행복한가? 저출산 해법은 이 물음에 ‘예’라고 답하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그런 사회를 가꾸고자 해법 마련에 힘쓰는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개인적으로 남성 육아휴직 같은 제도를 강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경우 육아휴직을 기업 자율에 맡겼더니 여성만 많이 써서 급여가 줄고 남성은 급여가 더 많아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법적으로 제도를 강제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 기업활동이 위축되거나 민간기업 자율성을 해친다는 등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공공부문부터 관련 제도를 도입해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길 바라는 것이다.

저출산 대책을 물 끓이기에 비유하고 싶다. 물은 99도에선 100년이 가도 끓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책은 80∼90도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나라가 지난 10여년간 저출산에 126조원을 썼다고 하는데 그중 82조원이 어린이집 관련이었다. 물론 보육기반을 확충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출산을 유도하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했는데 이번에 아기를 낳았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 사회다. 어느 연구를 보니까 소득 상위 10%는 혼인율이 82.5%인 반면 소득 하위 10%의 혼인율은 6.9%더라. 그런데 혼인하고 싶은 의사는 비슷하더라. 이런 문제를 여태 놔뒀다는 건 우리 사회의 직무유기다.
저출산 문제는 취업과 주택, 보육 이 3대 걸림돌을 해소해야 풀 수 있다. 그동안 저출산 대책은 보육에만 너무 많은 돈을 들였다.

‘이 상태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국민연금은 2043년에 2500조원으로 불어나 세계 최대 기금이 된다. 그런데 2044년부터 까먹기 시작해 2060년에는 마이너스가 된다고 한다. 불과 16년 만에 말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국민이 국민연금과 세금을 낼 마음이 생기겠나. ‘내가 돌려받을 돈도 아닌데 왜 내야 하지?’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소득이 있는 사람은 소득 신고를 줄이든지, 국민연금을 내지 않든지 할 것이다. 외국에서도 먹고살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 2040년 이전에 고소득자의 엑소더스(대규모 이민 행렬)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도 소득에 따라 혼인율이 차이가 난다는 건 출산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취업, 주택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풀면 가망이 있다는 뜻이다. 아주 비관적이지는 않은 셈이다.

정말로 주택 10만채가 필요하다면 10조원이 들더라도 지어야 한다. 돈이 부족하면 ‘국난극복세’라도 만들어 걷어야 한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저출산 대책은 절대 100도의 물이 될 수 없다.
장윤숙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사무처장
◆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

저출산과 고령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시에 진행되는 문제이고, 해결책도 다른 듯하면서 연관이 돼 있다.

특히 저출산은 우리 사회에서 그간 발생한 모든 현상의 결과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아니다. 현 시점을 원인으로 해서 다양한 상황이 파생될 수도 있다. 교육과 군, 주거, 보건의료 등 모든 것이 영향을 받는다. 보건의료만 해도 세부적으로 쪼개보면 소아과에서 노인 요양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도 중요하지만 5년, 10년, 20년 뒤 등 다가오는 미래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저출산 고령화 해결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이 문제가 교육과 주택, 일자리, 근로시간, 여가 등 삶의 질과 직결된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서다. 역설적이지만 이 때문에 해결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주된 이해당사자들이 논쟁하면서 실마리를 잡아가기 마련인데,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모든 사람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이해당사자가 없다.

출산하려면 주거가 필요하고, 주거를 마련하려면 고용이 안정돼야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도 해야 한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웬만한 정부부처는 물론 일자리위원회, 노사정위원회 등 모든 주체가 연관성이 있다. 공통 관심사이지만 어느 주체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아이러니다.

분명한 것은 단시간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 위원회 역할은 여러 사안에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각을 적용해 정책적 효율을 높이는 데 있다. 예컨대 근로시간 단축만 해도 노동자 생활 전반이 변화하는 것 외에 단기적으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적 인식 토대를 개선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현상이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라는 논쟁을 떠나 일단 우리가 이미 처한 심각한 현실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정부 들어 출산 장려의 틀을 벗어나 ‘일하며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를 표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간에 바꾸기 힘들다면 최대한 연착륙하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인식 개선 측면에서 ‘딩크족’(무자녀 맞벌이)이나 미혼모 가정, 이혼가정 등 여러 형태의 가정이 차별 없이 살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치관의 대립으로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생산적인 논쟁은 당연히 수용하고 해결해 가되 불필요하고 소모적 논쟁에 힘을 빼선 안 된다. 제도적으로 사각지대를 최대한 줄이면서 국민의 수용성도 높여 나가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나가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안다. 하지만 두 문제의 연관성과 지속적인 이슈화를 위해서라도 법적 취지에 따라 위원회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무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무

저출산은 기업의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기업 운영이 어려워진다. 기업이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일·가정 양립 제도의 도입을 거부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기업도 이제는 저출산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다만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라 어떤 제도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 없이 정부에서 밀어붙이다 보니 현장에서 어려움이 컸다. 정책을 내놓아도 제대로 적용이 안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르고 업종 특성에 따라 대응 여력이 다르다. 규모는 커도 인력 구성상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어려울 수 있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근로자 육아휴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꺼번에 밀어붙이지 말고 기업 특성에 맞는 제도를 연구하면서 성공 사례를 확산해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센티브를 주거나 도입하지 않은 곳의 명단을 공개하는 ‘망신주기’ 식으로 기업을 압박했다. 하나가 안 되면 또 다른 제도를 만들어 백화점식으로 늘렸다. 전체 기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기업 간 양극화만 심해진다. 급할수록 더 고민해서 적합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제1, 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때 10년간 80조원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그대로 아닌가.

따라서 축적된 연구를 바탕으로 현장에 실제 적용되는 상황을 보면서 제도화해야 한다. 60세 정년제 연장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준비 과정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1998년 60세 정년을 의무화한 일본은 무려 20년 전인 1970년대부터 공론화를 시작해 1980년대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덕분에 60세 정년제 시행 당시 전체 기업의 93%가 이미 관련 제도를 시행하는 중이었다. 한국은 2013년 법을 만든 뒤 3년 만인 2016년부터 바로 강제했다. 법 시행 때 제도 도입률이 20%대에 그쳤다. 현장에서 갈등과 혼란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최근 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안이 통과돼 일정 부분 장시간 근로가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학령기 자녀를 둔 외벌이 근로자일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연장 근로를 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녀 교육비 부담 때문이다. 현행 임근체계는 능력과 성과가 아니라 근무 시간만큼 임금을 주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하려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노조조차 근로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사업장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교육을 살리는 데 사회 역량을 집중하고 근로자 생산성에 따라 대우할 수 있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정리=윤지로·김준영·이현미 기자 kornyap@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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