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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서훈 특사의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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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06 23:16:55 수정 : 2018-03-15 13: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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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보상 방식으로는 핵 폐기 못해 / 한·미공조로 CVID 가는 길 찾아야

“미국 강경파들은 ‘만일 대북특사 방문이 결실을 거둔다면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주효한 것이고,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시각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것이다.”

 

2002년 4월 대북특사단을 이끌었던 임동원 당시 대통령외교안보특보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 외신 보도를 인용해 워싱턴의 냉소적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악화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평양을 찾았다. ‘부시 행정부’를 ‘트럼프 행정부’로 바꿔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지금 워싱턴 분위기도 북한 체제에 냉랭하긴 마찬가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후 임 특보는 “북·미 간 상호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달성할 때까지는 핵무기 개발이나 대량살상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고 썼다.

 

2018년 3월5일 1박2일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곧 미국 방문 길에 오른다. 그만큼 한반도 상황은 급박하다. 한반도 위기 진앙인 북핵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지난 1월 인류 위기를 상징하는 ‘운명의날 시계’(Doomsday Clock)는 11시58분, 자정 2분 전에 맞춰졌다. 미·소가 수소폭탄 실험에 나섰던 1953년 이후 자정에 가장 근접한 시각으로, 분침을 조정하는 미 핵과학자회는 김정은체제의 핵·미사일 도발과 미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강경노선을 그 이유로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20년간 냉·온탕을 오가는 동안 북한은 꾸준히 핵·미사일 수준을 끌어올려 사실상 핵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국정원 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지낸 라종일 교수는 김정일을 영민한 정치가로 평했다. “남북관계가 원활한 시기에 군사적 위협 없는 안전을 보장받는 한편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현실적인 성공은 핵무기를 완성해 기울어가는 정권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다.”(저서 ‘장성택의 길’) 핵유산을 넘겨받은 김정은은 6차 핵실험까지 마쳤다.

 

올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그제 남측 특사단과 마주 앉았다. 4시간여 접견·만찬으로 환대했다. 특사단이 어제 발표한 합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트럼프 정부가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다. 정 의장은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대화 테이블에 앉겠다고 밝힌 만큼 트럼프 정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미 공화당 내 인맥이 많은 워싱턴타임스의 토머스 맥더빗 회장은 지난주 본사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 반드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그 방식은 전임자인 오바마와 다를 것이라고 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 방식이라고 부연했다. 백악관이 지난 1일 트럼프·문재인 대통령 간 전화통화 후 발표문에서 명시한 원칙이다. 대북특사 소식이 전해진 4일 미 국무부도 이를 재확인했다.

 

 

황정미 편집인

이번 특사단에 포함된 서 원장은 2002년 임 특보 수행은 물론 여러 차례 대북 협상에 참여했다. 같이 일해본 사람들이 탁월하다고 평할 정도로 손꼽히는 북한통이다. 정 의장이 특사단장이지만 서 원장을 ‘키맨’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 정도라면 김정은의 호탕함 뒤에 감춰진 불안과 핵을 볼모로 한 생존 및 대남 전략을 간파했으리라 믿는다. 김정일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했지만 핵공장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트럼프정부는 북핵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만으로 ‘선물보따리’를 풀거나 대북제재의 끈을 늦출 생각이 없다.

 

대화의 문을 열어놓더라도 북한이 확실히 핵 폐기를 받아들이도록 미국과 압박공조를 펴는 수밖에 없다. 이번만큼은 ‘구두 약속’만으로 성급히 보상하는 과거 방식과 달라야 한다. 어쩌면 서 원장의 이번 특사외교가 그간 실패한 경험을 만회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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