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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인류가 뿜어낸 온실가스에… 엘니뇨 없이도 '열 받는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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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11 19:52:19 수정 : 2018-02-11 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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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해지는 온난화 / 작년 지구 온도 역대 2위… 바다의 인내심 한계 봉착
‘….’

아무리 자동차 열쇠를 돌려도 차는 코마 상태에 빠진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영하 15도 안팎의 한파가 연일 몰아치던 1월의 어느 날, 사람으로 치면 황혼기에 접어든 2005년식 자동차는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돼 계기판 불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올 들어 벌써 두 번째. 이런 차가 한둘은 아니었는지, 평소 10분이면 달려오던 긴급출동서비스는 2시간 뒤에야 올 수 있다고 했다.

이번 겨울 본색을 제대로 드러낸 북극발 한파가 실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가 됐다. 북극 한기를 막아주던 제트기류가 온난화로 흐느적대면서 찬공기가 쏟아져 내려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최근 지구가 뜨거워진 데는 온난화 말고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매우 거대한 힘이 숨어 있다. 혹자는 ‘마침내 빗장이 풀렸다’고도 하는 무서운 세력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980년(위)과 2016년 촬영한 북극의 모습. 1979년 이후 지난해까지 북극지방 빙하 면적은 연평균 5만여㎢(남한의 절반보다 약간 큰 수준)씩 줄어들었다.
NASA 제공
◆“훗, 엘니뇨 도움 필요없어”

거대한 힘의 실체를 공개하기 전에 지구의 상태부터 살펴보자. 올해 초 미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지구 온도가 평년(1951∼1980년)보다 0.9도 높아 역대 2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1위가 아닌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부연을 하자면, 1965년 이후 지구가 15번에 걸쳐 최고 온도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엘니뇨가 일어나지 않은 해는 3번뿐이었다.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 바닷물이 평소보다 따뜻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뜩이나 온난화에 시달리는 지구를 더 ‘열받게’ 만든다.

역대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인데 이때는 ‘슈퍼 엘니뇨’가 일어났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엘니뇨는커녕 적도 동태평양이 평소보다 더 차가워졌는데도(라니냐) 2위를 기록했다. 엘니뇨가 찬조출연하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지구는 ‘무언가’에 의해 계속 달궈지고 있는 셈이다.

그 무언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온실가스다. 2016년 현재 대기 속 이산화탄소는 402.9ppm인데 30만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 지금처럼 이산화탄소가 많았던 적은 없다. 히터가 나오는 따뜻한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지금 이 순간도 이산화탄소 농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온실가스가 골칫덩이인 건 분명하지만 이것만으로 지난해의 기록적인 온도 상승을 설명하긴 어렵다. 앞서 말한 인간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거대한 힘이 여기서 등장한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태평양 위에 왼쪽으로 넘어진 세모(‘◁ ’모양)를 크게 그려보자. 이 영역은 15∼20년 주기로 따뜻해졌다 시원해졌다를 반복한다. 이게 바로 거대한 힘인데, 정식 명칭은 ‘10년주기 태평양변동’(PDO)이다. 

PDO는 인간의 산업활동과 무관하게 원래부터 존재하는 자연 현상이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오름세가 늘 일정했던 건 아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들어 상승세가 줄더니 2001년부터 2014년까지는 온난화가 멈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둔화됐다. 그래서 이 시기를 ‘온난화 휴지기(hiatus)’라 부른다.

그런데 이 기간은 PDO가 (-)위상, 즉 태평양이 시원했던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반대로 PDO 주기가 (+)로 돌아서기 무섭게 가장 더운 해(2016년)와 엘니뇨 없이 가장 더운 해(2017년)가 기록됐다.

예상욱 한양대 교수(해양융합과학)는 “앞으로 10∼20년 동안 지구 온도는 매년 기록을 깰지도 모른다”며 “이산화탄소 배출로 예상되는 상승폭을 넘어 훨씬 빠르게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맙고 무서운 바다

우리가 바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다는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열의 90% 이상을 흡수한다. 우리가 한여름 ‘더워죽겠네’라고 투덜거릴 때의 열도 바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온난화로 불필요하게 남아도는 열을 대부분 흡수하는 것 또한 바다다. 2016년 ‘네이처기후변화’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1997년 이후 18년 만에 바다의 열용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건 바다가 느긋한 성정을 타고난 덕이다. 바닷물이 열대지방에서 극지방으로, 표층에서 심해로 순환하려면 수십년에서 수천년이 걸린다. 열이 고루고루 퍼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다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다. 바다에 갇힌 열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방출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바다는 쉽게 변하지 않는 대신, 한번 문턱을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호주의 고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팀 플래너리는 그의 책 ‘지구온난화 이야기’에서 바다를 탱크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괴물(바다)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많은 힘이 들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탱크의 진로를 바꾸기 위해 소형 승용차(대기·배출량감소)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바다라는 탱크가 굴러내려온다면?

바다라는 탱크가 언제 본격적으로 비탈길을 굴러 내려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이 대표적이다. 물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부피가 커진다. 따라서 바닷물도 온도가 올라가면 몸집이 불어나고 그 결과 해수면이 올라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에 따르면 1901∼2010년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은 매년 1.7㎜ 올랐다. 특히 최근 약 20년(1993∼2010년) 동안에는 매년 3.2㎜씩 상승했다.

그래봐야 손톱이 자라는 것보다 훨씬 느리지만 지금같은 추세라면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30대에 접어드는 금세기 중반 해수면은 24∼30㎝ 올라올 것이다.

엘니뇨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엘니뇨도 PDO와 마찬가지로 자연현상이지만 1990년대부터 엘니뇨의 주무대가 동태평양에서 중태평양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기후학자들은 동·서태평양이 온난화에 반응하는 속도, 즉 온도상승 속도가 달라서 벌어진 일로 보고 있다.

방 한쪽에 있던 난로를 가운데로 옮기면 각 위치에서 느끼는 열감이 달라지듯 엘니뇨의 주무대가 바뀌면 지역별 현상도 달라진다. 예컨대 북미대륙 동남부와 유럽의 대기온도는 전형적인 엘니뇨 때 올라가지만, 중태평양에서 엘니뇨가 일어나면 평소보다 내려간다. 반대로 남극에서는 중태평양 엘니뇨 때 대기온도가 올라간다.

2015∼2016년 발생한 것과 같은 슈퍼 엘니뇨가 지금은 20년에 한 번 일어나지만 앞으로는 10년에 한 번 일어나리란 전망도 나온다.

2015년부터 태평양에 따뜻한 시기((+) 위상 PDO)가 찾아오고 2016년 슈퍼 엘니뇨까지 일어나면서 지구 온도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자연현상인 엘니뇨와 PDO를 ‘괴물’로 만든 건 인류가 뿜어낸 온실가스다. 지금은 영하 20도의 혹한과 영상 40도의 폭염을 기상이변이라 하지만, 20년쯤 뒤에는 “그때가 좋았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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