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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의사람In] 불일치와 불균형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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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9 20:36:05 수정 : 2018-02-09 20: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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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홍대용은 단 한 번 연행에서 사귄 중국 벗과의 아름다운 우정으로 유명하다. 그런 홍대용이 이덕무의 시를 흠모하는 중국 벗에게 얼음장 같은 답장을 보냈다. 자신은 이덕무를 알지 못하며, 그의 시 또한 읽을 가치가 없다는 내용이다. 평소 적서(嫡庶)를 떠나 이덕무와 맺은 교류를 생각하면 섬뜩한 옹졸함이다. 이서구는 연암 그룹의 일원으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과 묶은 ‘한객건연집’으로 문명을 얻었다. 이서구의 시는 서정적이고 사색적이며 인정이 도탑고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날 그는 술주정하는 집안의 하인을 때려죽이라고 명했다. 마침내 그 하인이 맞아죽자 “내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니 장사를 후히 지내주라”고 지시했다. 언행이 고상하고 우아했던 홍대용과 이서구는 실학파로 분류되는 18세기 조선의 열린 지식인이다.

A선생은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글과 안목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이다. 그 A선생은 복지정책과 공공자전거 같은 편의시설의 증가가 행복지수와 정비례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세상이 좋아졌는데 무슨 헬조선이야.” B선생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공적으로는 무릎이 꺾여본 적이 없다. 여전히 화려한 현역인 B선생이 툭 던진 내심은 청년감성으로 사랑받는 선생의 것이라 믿기 어렵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조금만 힘들면 사회구조가 어떻다느니 하며 핑계를 대. 노력이 못 미친다는 걸 인정하지 않지.” A선생이나 B선생은 암울했으나 미래를 가꿀 수 있는 시대를 살았다. 독재와 부조리를 경계하던, 적어도 그렇게 비쳐졌던 두 분의 지성은 어디로 갔는가.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성과 자신이 누리는 지적·물적 토대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이기심은 다르다.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 ‘정의와 분배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그 가치를 위해 고민하는 자’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우월한 지식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속물근성의 ‘먹물’이거나, 그들 공동체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이익집단이 돼버린 지 오래다. 롤랑 바르트의 지적대로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사회의 찌꺼기’라는 혐의를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살았던 18세기 지식인들은 닫힌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열린 세계에 사는 21세기 지식인들의 한계는 닫힌 마음이 아닐는지.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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