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절망의 비가’로 올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손홍규. 그는 “아무리 끔찍하고 비참한 현실을 살더라도 인간이 얼마나 숭고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느끼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
올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손홍규(44)를 조금 늦게 만났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달 초였지만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를 수록한 작품집을 접한 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맞고 집을 뛰쳐나갔고 딸은 딸대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집을 나갔다. 아내는 어느 순간 남편을 포기하고 남편은 그 아내의 농성 현장에 갔다가 용역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평론가 김형중이 작품 해설에 손홍규가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것 아니냐고 썼을 정도로 소설은 암울한 편이다.
살면서 소설처럼 극심한 상실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작 자신에게 닥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손홍규는 정읍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는 전주에서, 서울에 올라와서는 동국대 국문과를 다녔다. 대학시절에는 ‘전문연’(전국대학생문학연합) 6기 의장을 맡아 수감생활까지 했던 ‘마지막 운동권’ 세대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2001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을 때 소식을 전했더니 아버지는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 아버지가 조경 노동을 하다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을 때, 수술비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외아들 손홍규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아버지는 탈곡을 하다 오른손 검지를 잘린 뒤 논밭 두어 마지기를 팔고 어머니와 함께 그릇, 운동화, 닭내장, 청과물까지 파는 트럭 행상으로 오래 살았다. 아들은 확성기 방송용 목소리를 녹음하면서 부끄럽긴 했지만 정작 소설가 손홍규를 만든 건 전적으로 그의 고향이요, 부모라고 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대학에 들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과 마술적 리얼리즘이었다. 초기작들에는 그 환상성을 어떻게 한국적으로 보여주느냐 골몰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느 순간, 마르케스의 환상성은 철저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자신은 환상성만 닮으려고 한 것 아닌지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곳의 현실을 다시 제대로 돌아보았고, 그중 일부는 이번 수상작품집에 수록한 자선대표작 ‘정읍에서 울다’와 아버지의 가출을 모티브로 삼은 ‘그 남자의 가출기’처럼 고향과 부모에 대한 헌사로 나왔다.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수술을 받은 뒤로 인생에 허무를 느껴 가출을 감행, 2년여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려가려니, 그 도둑이 아버지였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집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챙겨 간 것인데 이후로는 어머니가 아예 도둑을 위해 청국장 같은 꾸러미를 챙겨놓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가져가는 자리에 수박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다. 이 소설 마지막 문장은 ‘언제부턴가 그는 그렇게 집으로 가출해버렸다’고 썼다. 집으로 돌아간 행위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또 다른 가출일 뿐이라고.
“고향은 저에게 우주입니다. 항상 어렵고 힘들 때, 글을 쓰다 막힐 때 그곳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삶의 모든 고비마다 고향은 항상 저에게 고전처럼 들춰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정읍에서 울다’는 딱히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라기보다 인생에서 허무를 느끼는 고향 사람들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이런저런 사연을 뭉뚱그려서 쓴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부터 포복절도할 사연들을 듣는 게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모르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등 창작집 네 권에다 장편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등을 내며 꾸준히 성실하게 소설 밭을 경작해온 손홍규. 그는 “좋은 문학이란 이 시대에서 눈 돌리지 않고 동행하는 것”이라면서 “남들이 알아주든 안 하든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가”라고 그날 광화문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상 소식을 듣던 날 점심 먹을 때까지도 아내와 함께 왜 이렇게 운이 없고 가난하냐면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습니다. 다른 많은 작가들에게도 제가 받은 격려가 똑같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경중을 가리는 것보다 자기 세계를 완성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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