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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절망의 시대 살아도 인간은 얼마나 숭고한지 글로 남기고 싶었다”

입력 : 2018-02-05 20:35:39 수정 : 2018-02-05 21: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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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소설가 손홍규/소설 속 이야기 암울하고 비참/상식 통하는 시대 됐다지만/근본적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어릴적 시골서 들은 이야기/글 쓰고픈 열망 품게 만들어/고향은 위로 주는 우주 같은 곳/좋은 문학은 시대와 동행해/주위 평가 연연않고 계속 쓸 것  
어두운 ‘절망의 비가’로 올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손홍규. 그는 “아무리 끔찍하고 비참한 현실을 살더라도 인간이 얼마나 숭고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느끼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처음 서울 왔을 때 ‘인간이 너무 흔해’, 이런 시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구요. 그게 모던하고 도시적인 감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촌놈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사람이 많아서 지구가 좁아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사연도 생겨나고 지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지 절대로 조롱할 일은 아닙니다. 인간이 얼마나 숭고하고 신비한 존재인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쓰는 게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탈신비, 탈신화화된 시대에 인간의 신비성을 돌려주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올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손홍규(44)를 조금 늦게 만났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달 초였지만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를 수록한 작품집을 접한 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소설가 윤후명은 “근래 우리 소설이 나침반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라면서 “감각적인 제목에 집요한 필력이 돋보이는 이런 힘이 아직은 우리 소설에 있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심사평에 언급했거니와, 수상작은 암울한 절망의 비가를 정통 문법으로 담아낸 묵직한 중편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맞고 집을 뛰쳐나갔고 딸은 딸대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집을 나갔다. 아내는 어느 순간 남편을 포기하고 남편은 그 아내의 농성 현장에 갔다가 용역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평론가 김형중이 작품 해설에 손홍규가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것 아니냐고 썼을 정도로 소설은 암울한 편이다.

“글쎄요. 제가 기본적으로 인식하는 세계가 아무래도 비참한 쪽이다 보니까 전반적으로 상황 자체가 우울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나 여성노동자’를 보면서 20여년 전 사례들이 지금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됐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거지요.”

살면서 소설처럼 극심한 상실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작 자신에게 닥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손홍규는 정읍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는 전주에서, 서울에 올라와서는 동국대 국문과를 다녔다. 대학시절에는 ‘전문연’(전국대학생문학연합) 6기 의장을 맡아 수감생활까지 했던 ‘마지막 운동권’ 세대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2001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을 때 소식을 전했더니 아버지는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 아버지가 조경 노동을 하다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을 때, 수술비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외아들 손홍규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아버지는 탈곡을 하다 오른손 검지를 잘린 뒤 논밭 두어 마지기를 팔고 어머니와 함께 그릇, 운동화, 닭내장, 청과물까지 파는 트럭 행상으로 오래 살았다. 아들은 확성기 방송용 목소리를 녹음하면서 부끄럽긴 했지만 정작 소설가 손홍규를 만든 건 전적으로 그의 고향이요, 부모라고 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어린 시절 그의 고향집에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많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어머니 곁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였다. 손홍규는 일찍이 중학교 시절 무렵부터 고향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써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고 했다. 그 형태가 소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국문과에 진학했고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대학에 들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과 마술적 리얼리즘이었다. 초기작들에는 그 환상성을 어떻게 한국적으로 보여주느냐 골몰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느 순간, 마르케스의 환상성은 철저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자신은 환상성만 닮으려고 한 것 아닌지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곳의 현실을 다시 제대로 돌아보았고, 그중 일부는 이번 수상작품집에 수록한 자선대표작 ‘정읍에서 울다’와 아버지의 가출을 모티브로 삼은 ‘그 남자의 가출기’처럼 고향과 부모에 대한 헌사로 나왔다.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수술을 받은 뒤로 인생에 허무를 느껴 가출을 감행, 2년여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려가려니, 그 도둑이 아버지였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집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챙겨 간 것인데 이후로는 어머니가 아예 도둑을 위해 청국장 같은 꾸러미를 챙겨놓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가져가는 자리에 수박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다. 이 소설 마지막 문장은 ‘언제부턴가 그는 그렇게 집으로 가출해버렸다’고 썼다. 집으로 돌아간 행위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또 다른 가출일 뿐이라고.

“고향은 저에게 우주입니다. 항상 어렵고 힘들 때, 글을 쓰다 막힐 때 그곳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삶의 모든 고비마다 고향은 항상 저에게 고전처럼 들춰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정읍에서 울다’는 딱히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라기보다 인생에서 허무를 느끼는 고향 사람들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이런저런 사연을 뭉뚱그려서 쓴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부터 포복절도할 사연들을 듣는 게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모르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제목은 인생은 한바탕 꿈이었다는 맥락이기도 한데, 손홍규는 예전에 어른들이 하던 ‘인생이 재미가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재미’의 뉘앙스를 곱씹어보았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꿈을 꾸고 나서 슬픈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암울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았다. 남편과 아내가 처음 만나 말을 하지 않아도 순수하게 서로 이해할 수 있던 때로 돌아가면서 소설을 끝낸 건, 수십 년 부부생활을 하면서 갈라지고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증오까지 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때를 돌아보면서 다시 사랑하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싶은 열망이 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등 창작집 네 권에다 장편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등을 내며 꾸준히 성실하게 소설 밭을 경작해온 손홍규. 그는 “좋은 문학이란 이 시대에서 눈 돌리지 않고 동행하는 것”이라면서 “남들이 알아주든 안 하든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가”라고 그날 광화문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상 소식을 듣던 날 점심 먹을 때까지도 아내와 함께 왜 이렇게 운이 없고 가난하냐면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습니다. 다른 많은 작가들에게도 제가 받은 격려가 똑같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경중을 가리는 것보다 자기 세계를 완성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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