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핑크=여자의 색’이란 생각 언제 시작됐나? 정말 그럴까?

입력 : 2018-02-03 03:00:00 수정 : 2018-02-02 21:03:1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호리코시 히데미 지음/김지윤 옮김/나눔의집/1만3800원
여자아이는 정말 핑크를 좋아할까/호리코시 히데미 지음/김지윤 옮김/나눔의집/1만3800원


여자아이들은 언제부터 ‘핑크’를 좋아하게 됐을까. 그들에게는 핑크를 좋아하는 성향이 DNA에 입력돼 있던 것일까.

신간 ‘여자아이는 정말 핑크를 좋아할까’는 두 딸을 둔 저자의 의문에서 시작해 핑크의 역사와 문화를 짚어보는 책이다.

책은 ‘핑크=여자의 색’이라는 인식의 시작을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여자 신생아에게 핑크 옷을 입히는 풍습이 존재했다. 당시 여자아이에게 입히는 옷은 ‘로즈 봉봉’, 남자아이에게 입히는 옷은 ‘블루 베베’라고 불렀다. ‘로즈’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색인데, 이 시기 여성 중심의 문화가 꽃피었다. 장미꽃을 좋아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조제핀 왕비, 당시의 귀부인들은 드레스와 가구, 식기 등을 핑크로 물들였다.

1950년대 새로운 핑크 열풍을 이끈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인 마리 아이젠하워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취임식 때 마리가 입은 핑크 드레스는 전쟁 중 흙투성이가 되도록 일했던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리는 드레스는 물론 백악관과 별장의 인테리어까지 핑크로 장식했다. 그가 애용한 핑크는 ‘마리 핑크’로 불렸고, 주부들 사이에서는 부엌과 욕실을 마리 핑크로 칠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에 걸쳐 핑크가 주는 억압에 대한 불만이 여성해방운동의 형태로 폭발했다. 여성스러운 것을 강요하는 환경에 지쳐 있던 여성들은 육아환경에서부터 성별 구분을 없애기 위해 힘썼다. 이 시기 아기의 옷은 중성화되는 움직임을 보였다. 중성지향의 분위기는 1981년 레고 광고에서 잘 나타난다. 포스터에 등장한 여자아이는 감색 줄무늬 셔츠에 청바지, 감색 스니커즈를 착용했다. 레고 블록 아래에는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다”는 카피가 달려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중성적인 규범이 흔들렸다. 여자아이는 핑크, 남자아이는 블루라는 인식의 제품들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 보급된 초음파검사로 임신 중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되면서, 성별에 맞춘 아기용품이 인기를 얻게 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2000년대 디즈니가 선보인 ‘디즈니 프린세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핑크의 세계화는 가속이 붙었다.

핑크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여자아이만이 아니다. 미국 패션 브랜드 ‘J Crew’는 “핑크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라서 러키! 페디큐어는 즐거워”라는 광고로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트렌스젠더가 되기를 장려하는 광고’라는 것이 이유였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여자아이의 ‘탈(脫)핑크’가 아닌, 색상으로부터의 자유다.

저자는 “남자아이에 대한 억압을 의식적으로 줄여가는 것이 여성에 대한 억압을 줄이는 방책이 될지도 모른다”며 “여성들도 핑크의 객체가 아닌 형태로 사회에 들어가 그 역할을 늘림으로써 숨 막히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