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주거패러다임을 바꾸자] "한방에 2층 침대 2개 넣고 셰어하우스"…쪽방촌 같은 공유주택

관련이슈 주거패러다임을 바꾸자

입력 : 2018-01-22 19:44:17 수정 : 2018-01-24 14:36: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2회> 공유주택 가로막는 암초들 / 법적 기반·제도 전무… 규제 벽에 협동조합 설립 어려워 / 장려는커녕 곳곳 걸림돌 수두룩
지방에서 올라온 고려대 학생 김모(25)씨는 재작년에 6개월 정도 지낸 서울 성북구의 한 셰어하우스를 떠올리면 끔찍한 기억뿐이다. 월세 42만원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인터넷에 소개된 광고를 보니 일반 고시원, 원룸보다 생활환경이 나을 것 같고 학교와 가까워 입주했다.

그러나 기대와 영 딴판이었다. 우선 집이 너무 작았다. 1인실로 쓰는 방이 4개였는데 방 크기가 9.9㎡(3평)에 불과했고, 함께 이용하는 주방 딸린 거실도 비좁았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입주자 4명이 거실에 모여 TV를 편하게 볼 수 없었고, 빨래 건조대를 펼치면 앉을 공간이 없어 거실 이용자가 드물었다. 서로 서먹서먹해서 밥도 각자 방에서 따로 차려 먹었다. 김씨는 “교류할 공간은 물론 공동생활 규칙 같은 것도 없어 집안 꼴이 엉망이었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쓰는 사람 때문에 갈등을 빚었다”며 “셰어하우스가 아니라 열악한 고시원을 방불케 해 결국 원룸으로 옮겼다”고 혀를 내둘렀다.
공유(공동체) 주거 형태의 하나인 셰어하우스가 돈벌이에 눈이 먼 임대업자나 집주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실태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갑이 얇고 주거환경도 열악한 젊은층 등 1인가구를 위해 ‘가성비’가 좋고 사회적 관계망까지 복원해 주는 ‘공유임대주택’이란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공유주택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준과 정부 차원의 지원·관리체계가 전혀 없는 탓이다. 반대로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의 벽은 높아 공유주택 활성화를 가로막고 주거 선택권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셰어하우스 ‘우주(WOOZOO)’ 28호점 입주자들이 지난해 6월 옥상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습.
우주 제공
◆공유주택 장려는 못할망정… 걸림돌 수두룩

“정부가 공유주택의 가치와 중요성부터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공유주택 현장 전문가 상당수의 하소연이다. 커뮤니티 시설 등 공유공간을 갖춘 주택이 주택법과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어서 불합리한 규제 등에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다. 주거 불안이 심한 수도권에서 주택협동조합 설립이 쉽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공유주택은 입주자들이 협동조합을 세운 뒤 조합이 주택 전체나 공유공간의 소유권을 갖고 관리·운영을 책임지는 게 공동체 가치에 부합하지만 장벽이 만만치 않다.

지방세법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는 설립된 지 5년 이내인 협동조합 등의 법인이 부동산을 취득하면 많은 세금이 부과된다. 수도권 과밀화와 난개발을 막으려는 취지다. 그러나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기노채 이사는 “함께 살 사람을 모으고 기획하는 단계에서 (협동조합)법인을 만드는 데 어떻게 5년이 넘을 수 있겠냐”며 “영리목적 없이 주거안정을 위한 조합에까지 중과세를 하는 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동조합은 또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제1금융권 대출을 받기가 어렵거나 고금리가 적용된다. 다른 조합 관계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창의적인 주택을 지으려 해도 공유공간을 인정받기 힘든 데다 협동조합이나 공동소유로 한다고 하면 주택금융의 혜택이 거의 없어서 공유주택 확장성이 약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거공동체 안팎의 유대 강화에 공간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유공간의 지위가 불분명한 것은 문제다. 기준이 없으니 주택 인허가권을 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입맛에 따라 처리방식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주민 공동생활 공간임에도 근린생활시설로 등록해 취·등록세를 부담하고 불필요한 주차장 구역을 추가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이런 부담을 피하려면 공유공간을 그냥 방치하거나 관리사무소 등 엉뚱한 명목으로 허가받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담당자와 옥신각신하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면 비용 증가 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자들의 몫이다.

김란수 사단법인 인간도시컨센서스 연구위원(건축사)은 “주민 공용시설을 나중에 임대나 영업 등 영리목적으로 쓸까봐 무조건 제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단 공유공간을 당초 목적대로 활용토록 확약한 뒤 문제를 일으키면 엄벌하는 등의 유연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셰어하우스 5만실’도 당치 않은 소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청년 공공임대주택의 주요 정책으로 셰어하우스 5만실 공급을 약속했다. 청년들이 주거공간을 공유하며 임대료 부담을 줄이도록 하겠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시원 등을 매입해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청년층의 1인가구 급증과 주거불안정 대응책이나 순서가 한참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셰어하우스에 대한 규정과 가이드라인이 없어 관련 시장이 왜곡되고 혼탁한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철관 나눔과 미래 주거사업국장은 “셰어하우스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기업형으로 신축하겠다는 업자가 늘고 있다”며 “5만실이나 되는 물량을 공급하겠다면 적정 주거면적과 공유면적·시설기준을 명확히 하고 관리대책까지 내놓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 방에 1, 2명 살던 기존 하숙집에 2층 침대 2개를 넣는 ‘쪼개기’를 하거나 4인가구 기준 주택에 성인 8∼10명을 받는 ‘무늬만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업자도 많다.

서울 홍익대 근처의 셰어하우스 입주 경험이 있다는 김모(24·여)씨는 “월세가 45만원으로 비쌌지만 보증금이 없다는 점에 끌려 들어갔다”며 “그런데 입주자들끼리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고, 사실상 하루하루 잠만 해결하는 곳이었다”고 전했다.

셰어하우스 전문업체 우주(WOOZOO)의 이소현 마케팅·홍보팀장은 “개인과 커뮤니티 공간의 최소 크기와 방범·보안·화재예방 등 주거의 질을 담보할 요소들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낡은 제도 자체가 제대로 된 셰어하우스 확대를 어렵게 하는 부분도 있다. 국민 주거생활 안정 명목의 주택 부가세 면제기준이 40년 넘도록 국민주택규모 85㎡(25.7평) 이하여서 셰어하우스들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만큼 공유공간의 크기도 줄고 활용도가 떨어져 공동 주거의 질을 떨어뜨린다. 청년 1인가구의 경우 차량 소유자가 적고 차도 나눠 쓰는 공유경제에 익숙한 점과 무관하게 주차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학)는 “셰어하우스를 잘 운영하면 청년층을 비롯한 1인가구의 주거 불안과 사회적 고립 해소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서비스 품질 관리와 무분별한 임대료 상승 제한을 위해 법 규정을 만들고 면적 규제도 완화하는 게 좋다”고 주문했다.

◆신뢰할 만한 공유주택 플랫폼을 만들자

전문가들은 코하우징 주거문화 확산을 위해선 법률과 제도 정비 못지않게 주택소비자들이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하고 자기에게 맞는 공유주택을 찾도록 돕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들이 함께 살 공동체 구성과 공유주택 입주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최정신 가톨릭대 명예교수(소비자주거학)는 “국내에선 공유주택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거나 전파되지 않은 만큼 홍보·교육지원센터 등의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며 “일단 지자체 차원에서 공동체 주택 코디네이터를 육성해 마중물 역할을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유주택 공급업자들에 대한 인증제 도입 목소리도 나온다. 수익성에 치우친 부동산 개발·임대업자들의 난립으로 공유주택 시장이 왜곡되는 것을 막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 ke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정은채 '반가운 손 인사'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