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의 전날 성명 발표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할 방침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앞둔 전직 대통령을 겨냥해 어떤 언급을 해도 정치적으로는 득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1995년 12월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의 무대응이 전례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앞 골목 성명에 대해 “언급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은 “김영삼 대통령은 오늘 오전 전씨 성명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이나 표정 변화도 없었으며, 이는 전씨 성명에 괘념치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18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 실에서 지난 17일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성명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정치 현안 발언을 삼가던 문 대통령이 이날 직접 ‘분노’, ‘금도를 벗어나는 일’ 등의 강한 표현을 동원해 맞대응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분노’를 말했다. 제가 대변인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이라고도 전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한 것이 문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의 분노가 어떻게 개인적인 것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적어도 문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서도 “개인적 분노와 불쾌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1월 22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사를 하고 있다. |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여부에 대해서도 “청와대나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주기 위해 그런 꼼수를 쓰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이 정국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그러나 문 대통령의 격앙된 어조가 보수 여론을 자극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현 집권층에 새로운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자유한국당이 어느 정도 이 전 대통령을 엄호해 주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화가 난 듯한 표현, ‘정치보복’ 주장에 대한 강한 부정은 보수 결집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평론가는 “신중한 언행이라는 문 대통령 최대 장점이 희석됐다”고 지적했다.
박성준·유태영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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